바람쐬기

춘천 산토리니(Santorini)

라일락74 2012. 2. 4. 20:19

  Feb. 2, 2012

 

  숙명여대 교수인 두진숙  언니와 상봉역에서 만나 벼르고 벼르던 춘천 나들이를 다녀왔다.

 

한국은행 춘천 본부장 임기를 마치고 떠나기에 앞서 춘천에서 맛있는 걸 사주고 싶다는 휴머니스트회 동기 회우인 김시환 본부장과 간암 수술을 받고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차만국 친구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2 명으로 환영단을 구성해 마중 나온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어 주니 긴장감도 풀린다.

 

  하필이면 서울이 영하 14도, 춘천은 무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정도로 떨어진 매서운 한파가 밀어닥친 날이었으나 단단히 각오를 한 탓인지 막상 춘천역에 내리니 그닥 추운 줄을 모르겠다.  마침 바람도 별로 없는 맑은 날씨 덕택에 기분이 오히려 up 되었다.  

 

  대학 1학년이던 74년 여름방학과 75년 겨울방학때 농촌봉사 활동을 함께 떠났던 동기들이며 선배이기도 하니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벗들이다. 물론 이들의 해외유학과 해외 근무로 인해 못만났던 기간도 꽤 되지만 그래도 그만한 공백 기간이 만남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한국은행본부장이라는 위치에서 볼 때 업무상 수도 없이 드나들었을 정갈한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맛있는 한우 고기와 된장찌개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하였다. 휴..1월초에도 김유정문학촌에 갔었으나 춘천이 낳은 천재 소설가의 고향을 들르지 않을 수 없으니. 

 

  재작년 초봄,  휴머니스트 회우들이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을 때 김시환은 회우들에게 김유정 소설집 '산골이야기'를 한 권씩 선물했었다. 그런데 불쑥 김시환이 '산골이야기'를 읽었느냐고 묻는다. 아이쿠나 싶었지만 선물을 준 사람이 무안하지 않도록 몇 편 읽은 양 얼버무렸더니 몸을 파는 술집 작부들을 소설에서 뭐라고 하더냐며 불쑥 퀴즈를 낸다. .정답은  들병이 ... 춘천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김유정문학촌을 자주 안내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듯 했다.

 
김유정문학촌 앞    언덕 위의 <산토리니> 

 

  그리고 강변을 따라 잘 나 있는 드라이브길을 달렸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등선폭포 안내 표지가 나오는가 싶더니 그 옛날 강촌역 정거장이 낡은 모습으로 남아 있고 새로 만든 강촌역이 생겨나 있었다. 너무 많이 변해서 짐작할 수 없었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 각종 MT 와 여행으로 찾았었던 터이니 추억 어린 곳이 아니런가.

  지금은 강촌 엘리시안 리조트 건물이 멋지게 들어서 있어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고 있으나 특히 겨울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더 받고 있는 것 같다. 2층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고급스런 분위기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넓은 테이블마다 일정하게 놓여 있는 터키 블루 빛깔 유리잔이 기분을 상큼하게 해 주었다.

  스키장이 바로 내다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잘 내린 커피향을 즐긴다.  엊그제 내린 눈으로 인해 제법 그럴듯한 스키장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완만한 슬로프에서 바글거리는 초급자들과 엄청 가파른 슬로프에서 멋지게 활강하는 스키어들을 보며 젊음이 비껴 가는 걸 들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오--기  눈썰매라도 타자는 긴급 제안으로 우리 네 명은 플라스틱 썰매를 들고 눈썰매를 각각 두어 차례 탔다. 평일이라 꼬맹이들 몇 명 눈에 띄는 정도였는데 마침 눈썰매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썰매를 타는 몇 초 동안의 짧은 시간만큼은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즐겁기만 했다.

또한 달변가로 둘째 가면 서럽다 할 시환과 진숙 언니가 있으니 우선 즐겁다. 또한 시환의 표현에 의하면 장돌뱅이 수준을 훨 넘은 만국의 禪 문답을 모르는 체 할 수 없지.

 

아쉽게도 김시환은 근무 시간을 많이 비울 수 없어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고 만국이와 杜 선배와 춘천 명동 아이스크림집에서 또 수다는 이어진다.

  그만 서울로 되돌아올까 하는데 6시 퇴근 임박한 시각에 시환이 전화를 해 왔다. 가지 말고 다시 만나 근사한 곳에 가서 저녁 먹고 가라는 것이다. 못이기는 체 하고 한국은행으로 향한다. 시환 덕분에 본부장실 소파에도 앉아볼 수 있었다.

  어둠이 내려 앉을 무렵의 중심가를 빠져나오자 거리는 이내 한산하고 겨울의 적막함과 침묵 속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소양2교를 지나 산토리니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구봉산 자락에 자리한 꽤 큰 식당인 산토리니에서 바라보는 춘천 시내 야경은 정말로 매력적이나 가격이 좀 비싸서 지금은 인기가 하향세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레스토랑 홀 가운데로 나가보면 누구나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을 것 같다.  arch 모양의 소양2교에 불빛이 켜지고 어두운 밤 속에서 멀리 시가지의 불빛을 바라보며 이번엔 이태리식 음식과 와인으로 저녁 식사를 즐겼다. 

 
산토리니  발코니에서 .. 멀리 춘천
시내를 배경으로 소양2교 야경이
펼쳐지고 있다.
  따뜻한 난로가 놓여있는 실내에서,
두진숙 선배와 김시환 저 뒤에 보임,
차만국이 찍어 준 사진

 

김시환의 경제 강의와 소양댐, Greece Default 등 차근차근한 설명에 귀기울이면서 나는 연신 감탄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차만국(車萬國) 친구는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를 맞아 보낸 '용 용 죽겠지'라는 문자 메시지에 대한 설명으로 그의 심오한 관조적 인생관을 보여주었다. 杜언니 또한 7년간의 유학 생활에서 얻은 경험담을 실감나게 풀어내주었다.

 

나는? ? 좋은 벗들이 있어서 오늘의 춘천 나들이는 꽤 행복했다.  좋은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 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