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으로 리드하라 / 문학동네 刊 이지성 著
2016. 10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우리에게
책을 읽는답시고 나름 도서관을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물론 대학시절일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디지털 방식이 아니라 사서가 직접 서고에 들어가 찾아주고 도서관 카드에 일일이 손으로 기록하는 시스템이었고, 한 칸 한 칸 대출 반납일 도장이 찍힐 때마다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요즘 인문학이 뜨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 책은 인문학에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인문학 고전’을 읽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담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제, 정치는 물론 예술분야에서 탁월했던 많은 이들을 움직인 지혜의 샘은 고전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인으로는 ‘엄청난 독서가’들이던 조선시대 세종, 정조 같은 위대한 왕들이 있었고, 경제인으로는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현대 창업주인 정주영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고전에서 삶의 지표를 찾아냈다는 데 있다는 게 이 책이 펼치는 논리다.
책을 읽으며 젊디 젊은 글쓴이가 그 어려운 인문학고전들을 그 새 다 읽었을까 하는 게 궁금했는데 작가는 19세에 인문고전을 접한 계기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책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적어도 책에 소개된 거의 모든 책들을 섭렵한 후에 쓴 걸 짐작하게 되니 정말 놀랍기만 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 이지성씨와 결혼한 여성이 바로 유명한 여성 당구인 차유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엄청난 독서광이라는 사실은 이름만 알고 있는 저 유명한 철학자들은 지극히 필부필부인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으니 감히 비교할 바 아니어서 그닥 부끄러운 줄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독서광인 이 책의 著者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 동안 내가 열심히 읽었던 책들의 종류를 살펴보면 주로 소설이나 수필들이 대부분이다. 그다지 고전에 관심을 쏟은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책을 더러 읽겠노라 노력한다고 여기던 나였건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문고전 독서교육이야말로 두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그저 뛰어놀게 하더라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서서히 고전을 읽을 수 있게 동기부여와 칭찬이 곁들여져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고전이라는 것들은, 몇 장 읽으려고 해 봤자 너무 어려워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기에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물론 글쓴이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는 하는데, 다른 점은 그 어렵고 지루한 페이지를 버려두지 않고 어리석다 싶을 만큼 매달렸다는 게 다르다. 한 페이지를 읽는데 여러 날이 걸릴 정도로 노력을 요하는 책이어야 사고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필요한 부분은 필사를 하되 통독과 정독이 필요하다니, 이쯤 되면 도대체 엄두가 안 난다. 이렇게 공들여 천재가 된 들 오히려 불행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긴다. 물론이다. 불행한 천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인간이 대상이라는 말에 무한 신뢰가 생긴다.
철학과 경제와의 연계성이 있다는 말은 생각조차 못했다. 어찌 되었던 이 책에서는 국가의 운명은 인문고전을 어느만큼 읽는이들이 많은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인재 뿐 아니라 예술가에게 있어서도 인문고전은 그들의 예술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달려 있다고 한다. 첼리스트 장한나, 요요마는 하버드 대학 철학과에서 다시금 공부한다는 사실도 그런 맥락이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배 계급은 하층 계급민들에게 고전을 읽게 하는 것은 물론 문자 교육조차 시키지 않았다. 고전을 읽을 수 있는 상류층들만이 깊은 사고로 얻어지는 지혜를 근간으로 피지배계급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두뇌 혁명을 위해 한글반포와 책을 만들어 배포하고자 했던 위대한 우리의 군주이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더불어 인문고전을 읽었던 선각자들이 많았던 나라. 그래서 1,600년 동안 일본에 인문고전을 전달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전통이 깨졌다고 한다. 자국민들에게 메이지 유신 이후 인문고전을 읽게 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금 우리는 문화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아... 충격이다.
우리의 교육은 미국의 사립학교가 아닌 공립학교 교육과정을 그대로 베껴 쓰는 방식이라는 데... 즉 일방적 지식 전달과 암기 방식의 수업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은 많아도 지혜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것에 참으로 자극이 된다.
인류의 스승들과 깊은 정신적 대화를 하기 바란다며 지식 습득이 아니라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와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 빨리 내 아이들에게 인문고전을 읽게 하고 싶은 안달이 생겼다.
여기서 말하는 대표적 인문고전의 하나로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던 플라톤의 ‘국가론’ 같은 책이다. 과학자도 예술가도 역사나 철학을 외면하면 리더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캘리포니아공대 머리 겔만교수가 제임스 조이스 문학에 일가견이 있다고 하니 어찌 비범하다 하지 않으리오.
몇 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인문고전만 읽고 세상으로 나오니 천재가 되어 있더라는 연암 박지원. 꼴찌의 대열에서 빠지지 않던 아인슈타인, 뉴턴, 처칠, 에디슨 등 이들의 삶 역시 인문고전 독서로 꽉 채워진 이들이다. 그들은 학교 공부는 꼴찌였으나 하루에 몇 시간씩이고 고전을 읽었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그럼 그들은 원래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라고? 그럴 수도 있으나 결론은 누구나 교육을 받으면 그렇게 된다고 하니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감이 생겨난다.
글쓴이는 인문고전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주루루 나열하고 있다. 왜냐? 고전 속에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다소 구체적이지 못 하고 책을 읽어야 되는 걸 누가 모르나?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심지어 지적장애가 있다 해도 책을 읽도록 시키며 누구라도 고전독서 교육을 통해 엄청난 자신은 물론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는데 그 매력이 있다. 삼류였던 시카고 대학이 명문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던 이유가 바로 모든 학생들은 재학 기간 4년 간 100 권의 고전 독서를 의무적으로 마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는데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TV 시청물을 본 적이 있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여 본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질문이 없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인데 왜 그럴까? 그것은 물음표 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시대를 막론하고 부자들은 인문고전 독서가라고 한다. 가난해도 독서로 부자가 된다고 중국 북송대의 정치가이던 왕안석이 말했다. 자본주의 틀을 만든 사람들이 인문고전 독서로 두뇌를 단단히 한 경제학자들이라는 것도 내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하다. 적은 돈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이룬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인문고전 독서의 대가들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고 있다.
‘중국어를 배워라’라는 내용에서는 중국의 힘을 보는 듯하다. 부자가 되려면 돈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고를 변화시켜 주는 역사, 철학, 지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게 주안점이다.
귀족들이나 타고 다닐 것 같던 자동차가 오늘날 대중교통수단이 될 줄을 평범한 사람들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나 비범한 이들은 이것을 널리 보급하려 했다는 말이다. 스티브잡스도 소크라테스광이었다고 한다. 즉 질문법을 경영에 적용했다고..시대의 리더들은 문학고전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을, 철학고전을 통해서 인간의 생각을, 역사고전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의 배움을 널리 활용했다.
책을 읽은 척 말고 제대로 읽으라는 소제목에서도 뜨끔하다. 사실 나는 고3 여름 어느 날인가, 너무 더워 책상을 복도에 내놓고 입시공부를 하다 말고 「논어」를 읽고 있었다. 73년 당시에 유행이던 노란색 문고판이었는데, 고2때 내 인생의 모토로 삼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말이 논어의 학이편에 나오는 것이라니 나도 논어 한 번 읽어보자는 단순 호기심 정도로 읽게 된 것인데, 그 때 담임선생님은 책을 읽던 나를 보고 시험공부는 안 하고 그런 책을 읽냐고 하셨던 게 기억난다. 아무튼 내가 허투로 읽은 「논어」야말로 읽은 척 한 것일 뿐이니 머릿속에 남아있을 리가 없으므로 다시 한 번 도서관으로 가서 논어를 찾아봐야겠다.
공자는 사실 하급무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자기계발에 힘써 국가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한다.‘논어’는 사실 공자의 말을 제자들이 엮은 것으로서, 기업 총수들이 논어를 애독한 사실을 들어 그들이 어떻게 최고의 경영자들이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논어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퇴계 이황, 이율곡, 정약용, 서경덕, 박지원 등 우리나라 학자들의 책도 포함되어 있음이 무척 반가웠다. 돈, 능력과 배경 없을수록 인문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도 고무적이다. 인문고전의 저자들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들이었으며, 이들의 저서, 즉 ‘논어’ 맹자 같은 책들의 주요 고객은 왕들이었고, 지금도 기업 CEO들과 각국 대통령들은 세계적인 석학들의 자문을 받는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니 우리네의 평범함은 상대적으로 더욱 평범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인문고전 독서도 결국 나와 너와 우리를 위한 것이라 하는데 참으로 마땅하지 않은가. 독서를 통해 내 자신이 변화되면 이는 나를 둘러싼 이들에게 그 변화의 파장이 갈 것이기에. 하여 책을 읽는 지적행위로 교만할 것이 아니라고 호소함 또한 마땅하다.
자신이 평범하다고 극구 주장하는 글쓴이는 어떻게 이 많은 인문고전을 읽고 작가의 길에서 승승장구하는가? 그 뿐인가. 도서관을 들러 책을 빌리고 반납하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는데, 하루에 한 권 이상 책을 읽지 않으면 먹지도 않을 만큼 지독한 독서를 한 게 겨우 20대 후반이었으며, 빚 갚고 작가 스타덤에 올라섰다는 보기 드문 집념과 열정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작가 자신도 고전을 필사하면서 읽었다는데 정말? 하고 반문하고 싶을 정도이다.
책의 말미에 적절한 인문고전 독서교육가이드 편도 고맙다. 비록 나는 이제 고전을 읽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며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아들딸과 사흘 전에 태어난 나의 첫 외손주, 이들에게 지혜의 샘을 조금씩 찾아볼 수 있도록 조언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백독백습을 하신 분이라 한다. 즉 100번 읽고 백번 필사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음은 오직 백성 사랑이 근간이었다니 감동이 아닌가. 조선시대의 수많은 학자들도 이처럼 글을 반복해 읽는 과정에서 삶의 방향키를 잡을 수 있었다는 배경 설명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아니 이 책을 읽는 모든이들에게 긍정적 자극에 충분히 노출시켰을 줄 믿는다. 그리하여 나 또한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만나게 된 것을 고맙다 할 밖에..
그러나 조금의 의문은 있다. 과연 인문고전만을 읽어야 지혜의 샘이 솟아오르는지?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