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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솔 숲 길

라일락74 2023. 11. 11. 22:51

2023. 11. 11. 토요일

 

모처럼 남한산성 길 걷기 나들이를 다녀왔다. 이번 가을에는 여러 가지로 많은 일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로 단풍을 눈에 담지도 못한 채 벌써 11월 중순에 이르렀다. 올해도 결국 가까운 올림픽공원도 못 가 봤을 정도로 내 게으름은 저만치 둔 채 또 한 계절을 보내는구나 싶어 아쉬움만 삼키고 있던 차에 늦가을 마지막 열차에 올라탄 셈이다.

 

늘 그랬듯 오늘도 10-14구역장인 홍기영권사님의 수고와 베풂이 있어 미안함과 함께 그저 편하게 얼굴만 들이밀고 호젓한 숲길을 걷기로 했다. 전직 초등교사로 늘 상큼한 홍기영권사님, 전직 초등교사이자 동요작곡가인 이성복권사님, 음식솜씨 짱이자 중창단에서 알토 핵심멤버인 양희숙집사님이 오늘의 멤버들이다. 홍기영권사님이 자동차로 그저 편하게 산성로타리까지 이동하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난 그 길을 자동차로 지나노라니 35년전 운전 연수 마지막 코스로 덜덜 떨며 핸들을 꼭 잡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 잠실교회에서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전교인 걷기대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마지막 코스인 <남한산성 걷기> 프로그램이 없었더라면 고스란히 내년으로 가을 단풍 호사를 미룰 뻔 했다.  그렇게 <남한산성 숲 길 걷기>에 구역모임으로 참가하면서 그나마 늦가을의 끝자락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미 단풍의 화려함은 대부분 스러졌지만 수분 빠져 뒹구는 낙엽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쓸쓸하면서도 정겹고, 늦가을 서늘한 바람과 쾌청한 날씨는 상쾌하였다. 

 

마천동에서 올라가는 남한산성 길은 여러 차례 가 보았으나 자동차로 이동하여 산성 로타리까지 와서 여기서부터 걷는 일정은 사실 처음이다. 점심식사를 할 음식점에 일찌감치 주차를 한 후 슬슬 숲 길로 이동하였다.  산성로타리에서 시작하여 ▶북문(0.4km)-(우익문)서문(1.1km) 수어장대(0.6km)에서 행궁을 거쳐 산성로터리로 되돌아나왔다. 미리 설정해 놓은 12군데를 포함하는 일정 구간을 통과하게 되면 <워크온 앱>에 저절로 참여 스탬프가 찍히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그 중 6개의 스탬프를 획득했을 뿐이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과 뗄 수 없는 지명이라 썩 내키는 떠올림은 아니지만 왜 진작에 여기를 못 와봤을까 싶을 정도로 풍광만큼은 새삼 수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으로 둘러져 쌓여진 성곽 가운데 외부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는 구멍을 내다보며 당시의 긴박함에 시대적 상황속에 잠시 들어가본다. 궁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전히 버텨주고 있는 성곽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조선의 굴욕적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 남한산성을 소재로 한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은 물론 심지어 뮤지컬로도 올려졌을 만큼 다양한 장르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 역사의 흐름은 과거의 흔적들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고찰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 

 

2014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은 경기도 도립공원(사적 제57호)으로서, 주봉인 청량산을 중심으로 남문 동문 북문 등 성남 광주 하남 송파로 연결되고 있다. 해발 480m의 고도의 험준한 산세이면서도 분지 형태를 갖추고 있어 마을이 들어설 수 있는 지형적 형태로서 그만큼 방어력을 갖춘 곳이며, 둘레 11km가 넘는 성벽으로 구축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축성술을 잘 보여주는 성곽물이다.

 1636년 병자년, 청나라가 기습적 공격을 감행하여 호란을 일으켰던 당시, 조선이 열세에 몰리자 인조임금은 남한산성으로 47일간 피신하여 항전했던 곳으로 굴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먹을거리가 부족할 수밖에 없던 산중에서 군사들과 함께 오랫동안 머물 수는 없었기에, 결국 인조는 송파 삼전도의 굴욕인, 한 나라의 왕이 오랑캐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이른바 삼배고구두례를 행하였다. 실제로 고개를 땅바닥에 찧는 과정에서 왕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을 만큼 치욕적인 의식을 치름으로서 항복한 얼룩진 역사를 우리는 배워 알고 있다. 병자호란의 폐해는 1592년 임진왜란이 남기고 간 피해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고 한다.  '환향녀(還鄕女)'라는 말은 바로 이때 생긴 것으로서, 청나라로 끌려갔던 여인들이 고향에 돌아왔으나 차별과 냉대를 받게 되어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던 여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행궁 행궁 사진기사 자처하는 홍기영권사님

 

 

행궁이라 함은, 왕이 도성 밖을 나갈 때 머물 수 있도록 지어진 임시 궁궐이다.  남한산성행궁은 1626년(인조4년)에 대대적으로 구축되었으며, 우리나라 행궁 중 종묘 사직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수원화성 행궁은 도심 한가운데 있고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곳이지만, 이곳 남한산성 깊숙한 곳에도 행궁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남한산성 행궁 내에는 201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의 자료들이 영상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슬픈 역사의 기록이지만 산 자락을 휘돌아가며 어떻게 저리도 튼튼하게 산성을 쌓았을까를 생각하면 안타까우면서도 그 솜씨가 대단하다. 행궁 입장료는 2천원으로 경기도민과 경로는 무료로 들어갈 수 있으며, 행궁 내 자료관에는 소박하지만 남한산성에 대한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행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은 비교적 너른 잔디밭이 있고 주위에는 짚으로 이엉을 얹은 초가집 두어 채도 있어 오래 전 시간을 되돌려보는 듯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돌담이랑 빛 바랜 문짝에 기대보기도 하면서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풍광을 감상한다. 점점 주름도 많아지는 낯이지만 그래도 오늘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  'smile!!' 하며 사진으로 나를 남긴다. 

소나무 가득한 숲 길에 수북히 쌓인 솔 숲 길을 가로질러 '국왕의 길'이라 이름붙여진 길로 되돌아 나오다보니 산성로타리로 이어진다. 

 

산성로타리 주변은 음식점들과 예쁜 카페들도 많다. 우리는 아까 주차해 놓은 음식점으로 가서 맛있는 백숙을 먹으며 손주들 재롱을 자랑해가며 교회의 걷기 행사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감사했다. 맑은 바람을 들이마시며 건강을 저축하는 기분으로 보낸 토요일이다. 

홍기영권사님, me, 양희숙집사님
이성복권사님  
행궁 돌담에 기대다. 수어장대
거북등처럼 굵게 패인 소나무 기둥

 

산 둘레에 쌓은 성곽을 가늠해 보라    
행궁 입구, 저만치 보이는 초가지붕 수어장대 수어장대

 

 
솔 숲 수어장대 기와지붕과 돌담으로  만들어낸 파란색 
전직 초등교사이자 동요작곡가
이성복 권사님과 함께
  홍기영,이선숙,양희숙,이성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