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5, 2012
68년, 중학 1학년 꼬맹이 시절 학교 특활반을 기웃거리다 찾은 데가 (누구나 특활반 활동을 하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니었으나 많은 애들이 합창반, 규율부, 방송부 등 국민학교를 막 졸업한 애들의 구미를 당기는 특별반이 많았었다..) 원예반이었다. 꽃 가꾸기가 얼마나 힘이 든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꽃집을 하고 싶다고 했던 때이니...
당시 우리 학교 건물은 교문을 들어서면 운동장 저만치 학교 교사 현관 바로 보였고, 여기서부터 고3 교실이 있던 층까지 거의 12층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단일 건물로 그렇게 높았다는 게 아니라 산기슭을 다듬어 지어진 건물이다보니 중학교 校舍와 고등학교 건물들은 겉보기에는 각각 따로 떨어진 건물들로 배치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전체적으로 잘 연결된 구조물이었다. 예컨대 비(雨)라도 오면 각각 건물은 다르지만 1층부터 고3교실까지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시사철 목멱산의 아름다움 속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들은 참 부지런하게도 교내 구석구석에 자리한 음악실이며 시청각실, 강당 등 잘도 쏘다닌 것 같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찾았던 학교 운동장은 당시 1,900 여명이 한 번에 운동장 조회를 서고도 남았던 더 이상 기억속의 큰 운동장은 아니었다. 그 운동장에 접한 중앙현관에서부터 연이어 올라갈 수 있는 학교 전체 건물의 연결성에 무척 놀라워하면서 또 대단한 자랑거리로 늘 가슴에 담아두었었다. 지금도 10대의 눈높이를 여전히 갖고 싶은 지도 모른다. 보면 작은 것도 크게 볼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도 그 건물들 중간 지점에 아주 나즈막한 동산이 있어 사시사철 숲의 변화를 볼 수 있었고 바로 앞에는 매점이 있어서 점심시간 무렵에는 정말 부지런히도 매점을 오가며 재잘거렸고 바로 그 작은 언덕 아래 학교 온실이 있었다. 그러니까 중학생들이던 고등학생이던 중앙통로로 모이는 교내에서 가장 번화로??였었고 바로 그 공간에 온실이 있었으나 막상 온실을 찾는 애들은 많지 않았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곧바로 원예반에 가입하였고 따라서 온실을 자주 들랑거리면서 처음으로 중2 선배 언니들을 알게 되었다. 원예반 활동을 하면서 회현동 신세계백화점 앞 분수대 꽃밭에 팬지꽃을 심던 일들, 점심 시간이면 잽싸게 달려가던 작은 식물원과 불과 열 걸음이면 올라갈 수 있던 동산이 나의 정서적 기반이 되어 준 것 같다. 온실은 습한 기운으로 인해 온통 이끼들로 뒤덮인 유리창과 녹색으로 부서지는 햇살과 각종 식물들이 내뿜는 향기로 늘 독특했는데 그 중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온실 입구부터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던 주홍빛 제라늄 꽃들의 행렬이었다. 서양 허브의 일종인 제라늄은 꽃 색깔이 화려하고 사시사철 피는 꽃인데 향기는 조금 코끝을 아리게 하여 그 냄새가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었다. 물론 지금은 ㅐ력을 느끼게 되었지만...
우리집은 마당도 없고 또 앞집에 사는 순애네 높은 마루벽에 가려 햇빛도 별로 들지 않아서 꽃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 되면 길가에서 노상 판매하는 각종 球根들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웃거리는가 하면, 또 가장 흔한 나팔꽃이나 분꽃씨를 화분에 심어보는 등 나름대로 꽃가꾸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늘 해를 받지 못하는 식물은 자라지 못한다면서 헛수고 하는 딸의 취미를 알아주지 않으셨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한 번 무언가 하고 싶으면 기어이 흉내라도 내보는 편이다보니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 날 백합 구근을 사다 화분에 심고.. 햇살이 드는 곳으로 화분을 옮겨주기를 반복...하였다. 그 날도 해 바라기를 시켜주기 위해 陽地 바른 쪽으로 화분을 옮겨놓고는 바로 그 앞 마루 끝에서 낮잠을 청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코 끝을 간지럽히는 그윽한 향기에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서 놀라 눈을 떠보니 글쎄... 길쭉하게 봉우리를 내밀었던 백합 한송이가 활짝 피어나 주위에 향기를 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은 탄성을 지르면서 너무도 신기해 했었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당도 베란다 공간도 별로 없기로는 지금도 비슷하지만 여전히 화초가꾸기를 잘 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 열성이 훨씬 적어진 것은 분명하다.
작년 섬진강변 매화 마을 꽃구경을 다녀오면서 한 팔 길이쯤 되는 작은 홍매 한 그루를 사 들고 왔다. 키우다 혹시 죽으면 말지 하는 심정으로 문 밖 계단에 놓아두었는데 그 매화나무 가지에 눈(眼)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번 겨울에 꽃을 피워냈다. 그야말로 설중매 아니던가... 남녘에도 3월말이나 되야 필 꽃일 텐데 비록 얼마 안 되는 꽃송이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환상적인 매화 향에 너무도 신이 났다. 무덤덤한 큰 딸 동미니에게 억지로 꽃 향기를 맡으라고 엄포 놓기를 수 차례. 마지못해 아이는 매화꽃 가까이 코를 갖다 댄다....
이번 겨울 매화는 나에게 이렇게 작은 기쁨을 주었다. 동미니의 합격 소식도, 또 내가 1년 더 기간제교사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생각지도 않게 년초부터 매화 꽃망울이 터져주다니 분명 상서로운 징조일 거라며 애써 긍정적으로 연결시키고 싶었다. 이젠 우리 토니의 합격 소식도 멀리 독일땅에서부터 날아들어오면 좋으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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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7 꽃봉오리 |
12.2.13 제법 개화 |
같은 날 |
겨우 햇살받고 있는 홍매 |
집에 몇 개 안 되는 화분 중 하나인 군자란도 비슷한 경우이다. 5 년 전 수유리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산 4 천원짜리 군자란이 해마다 이쁘게 꽃을 피워주고 있어서 눈을 즐겁게 한다. 잎 끝은 말라서 누렇게 되었는데도 신기하게 화사한 주황빛으로 한 달 이상을 꽃을 피워내고 있다. 꽃이 피는 게 아니라 분명한 목적어인 '꽃'이라는 걸 피운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개화의 의미는 같지만 더 적극적인 語感을 갖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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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4일 꽃눈 올라옴 |
3일후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
12. 2.13 만개 |
봄의 전령은 어느덧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 왔다. 쌀쌀하면서도 포근한 바람결이 그러하다. 꽃 피는 봄 되면 만날 수 있다던 사람은 추운 겨울이 다 지나도록 만나지 못하였으나 꽃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때를 알아 찾아와주는 꽃들이 넘쳐나는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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