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4일, 호치민
지루한 장마와 습기 가득한 무더위를 뒤로 하고 4월 들어부터 각자 여행에 필요한 부분을 분담하여 수고하여 준비해 왔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터이지만 먼저 렌트카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에게 이메밀로 문의하고 설명을 듣기도 하였으나 막상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항공권, 여행 코스, 숙소, 렌트카, 네비 등을 준비하고 벽에는 전지에 인쇄된 서유럽 지를 붙여놓고 우리가 갈 코스를 짚어가며 조금씩 기대를 실어날랐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야말로 즐거움의 전부라고 할 만큼 설렘과 기대로 몇 달을 꾸린 날들, 드디어 첫 가족해외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아직 공부를 하고 있는 정선, 준용이와 임용고시 합격하여 겨우 교사생활에 돌입한 큰딸 정민이, 나 역시 기간제교사로 아직까지 학교 근무를 하고 있는 터라 여름방학을 이용해 시간을 맞출 수 있었으나 사실 함께 시간을 내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작년 여름 독일에서 대학원 입시준비를 하고 있던 정선이가 귀국했을 때 전북 무주군에 자리한 마치 외국의 산촌 같은 펜션에서의 가족여행에의 즐거웠던 기억을 되살리면 이 여행에서도 후회는 없으리라 하고 4월초부터 계획해 온 것이다.
이른 아침 24시 간단히 요기할 김밥을 몇 줄 사 들고, 오금역까지 오는 짧은 거리임에도 벌써부터 날씨는 후텁지근한데 장마철답게 밤 새 비가 내리고 이튿날 아침까지 계속되는 굵은 빗줄기 속을 가르며 공항 버스에 오른다. 갈 곳은 많으나 도대체 어떻게 어디를 둘러봐야 할 지, 렌트카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어디서 묵을 지에 대해 고민하기를 수 차례.. 렌트카는 아들내미가, B&B 숙소는 큰딸이, 프랑스 파리 숙소는 작은딸이, Route 는 내 맘대로... ㅋㅋ 이렇게 각자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일을 진행했고 . 드디어 15일간의 여행 일정이 시작되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어랏!!!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유리문 바로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알고 보니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꽃보다 할배’ 배낭 여행 팀이 대만으로 떠나는 날이라 탈랜트 최불암이 그들을 배웅하는 설정으로 촬영하고 있는 중이었다.(나중에 대만 여행 1탄을 보니 동미니 모습이 스쳐 지나갔음... ㅋㅋ) 기껏 사 들고 간 생수는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미처 마시지도 못 한 채 공항 검색대 앞에서 버려야 했다. ... 공항트레인을 타고 제2공항으로 이동하여 베트남 항공 409 편 탑승. 요즘 들어 하필 항공기 사고 소식을 많이 접했던지라 다소의 불안이 엄습해 왔지만 그것도 잠시 뿐 여행의 시작점에서의 들뜬 기분은 더욱 구름을 탄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모험 차 베트남 항공을 이용하였기에 중간 경유지인 호치민까지 4시간30분 비행시간을 거쳐 장장 3,700km 이동하여 10시간도 넘는 긴 경유 시간을 거기서 프랑크푸르트 행으로 환승해야 하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베트남 호치민 공항 출입국 관리원들은 모두 마치 북한 공산당원들이나 입음직한 카키색 군복을 입었는데 인상도 좀 고약해 보였다. 일단 줄을 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려 드디어 간단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몇 시간 정도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 달라는 허가를 구하니 관리직원은 일언지하에 'No!' 했다. 입국 허가를 받지 못 하면 공항에서 무려 10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야 되는 데 싶어 잠시 아뜩했다. 그럼 어떻게 하냐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가락으로 저쪽을 가리키며 저기서 기다리면 된단다.. 어랍쇼!! 기막혀라.... 큰일났다 싶었지만 재빨리 다른 입국심사대로 옮겨 여자 직원이 근무하는 줄에 섰다. 경유 시간이 너무 길기도 하지만 이 기회에 호치민 관광도 하고 싶다며 밖으로 나가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하였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나와 정민이를 훑어 보더니 사실은 안 되지만 마냥 기다려야 하는 우리네 사정을 아는 듯 도장을 꽝 찍어 주었다. 미리 블로그 답사를 통해 입국심사대에서 영어를 좀 하는 척 하라는 글들을 많이 봐 왔던 터라 괜시리 그래도 썩 괜찮다 싶은 영어 발음을 무기로 몇 마디 잘난 체 한 게 통했나 싶었다.. 와우.. 그래서 반 나절 호치민 여행 기회도 얻었다.
말로만 듣던 마스크 쓴 오토바이 족들이 난리북새통으로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자동차들이 신호등 없는 대로에서 여기저기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는데 무서워서 길을 도무지 건널 수가 없다. 무법천지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정민이, 준용이는 베트남 화폐 단위를 계산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아, 머리 아파.... 베트남 화폐 단위인 '동'을 20으로 나누면 대충 우리돈...이란다.
정말 수 십 번의 도전 끝에 가까스로 길을 건너서 주택가로 들어섰다. 열심히 발 품을 팔아 한글로 ‘발 마사지’라는고 쓰여진 간판을 찾았는데 이 집은 동네 한 가운데 있어서 가격도 몇 집 알아 본 중 가장 싸고 친절했다. 네 식구가 한 방에서 80분 동안 바디 마사지를 받았다. 가격은 1인당 9천 5백 원.. 야호..!! 경유지에서 허탕칠 각오로 왔는데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신난다. 이들에게 tip이라도 주려는데 바꾼 돈도 없고 해서.... 가지고 간 떡을 내 놓았다.
가방을 뒤 쪽으로 얼러 메고 거리를 헤매는 내가 불안해 보였던지 한 남성이 다가오더니, 이곳에서 가방을 그런 식으로 메면 안 된다며 주의를 주었다. 이곳에 거주한다는 고마운 한국인이었다. 그에게 우리 입맛에 맛는 쌀국수 집을 소개해 줄 것을 부탁하니 쌀국수 집은 꽤 많아도 아마 입맛에 맞지 않을 거라며 Pho 24'라는 작은 가게를 소개해 주었다. 편의점 같은 곳인데 정말로 한국에서 먹어본 것과 그닥 다르지 않은 데다 상당히 맛이 좋았다. 한 그릇에 39,000 동이라니 2천 원 정도의 가격으로도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었으니 오늘 맛사지와 더불어 무슨 횡재한 기분이었다.
호치민 날씨도 엄청 습하여 더운데 공항 화장실 벽에서도 이미 본 바 있는 10cm 가량 크기의 도마뱀이 건물벽에 심심치 않게 기어다니는 걸 볼 수 있다. 호지만 시는 우리네 70년대 시절을 보는 듯 했다.
호치민 공항 면세점 | 호치민 뒷골목에도 넘치는 오토바이들 |
7. 25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in
호지민 공항에서 탑승하여 12시간을 機內에서 보내고 드디어 아침 6시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지난 10여 개월 동안 못 만난 딸 또니 심정선이가 마중나옴. 딸 애는 우리를 보자 마자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공항에서 렌트카 직원에게 전화 후 세 아이들이 알아서 저희들끼리 폭스바겐 캐디를 인도받는다. 렌트카 직원이 딸 아이에게 독일어를 잘 한다고 칭찬하는 걸 보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사실 네비를 잘 볼 수 있을지 몇 달 전부터 자동차 여행카페에 열심히 들랑거리면서 route, navigation 등에 관해 질문을 하고 또 친절한 답변을 주고 받으면서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너무도 자신이 없었다. 센스쟁이 아들 주니를 믿고 가야지 싶어 locus map, copilot 파일 등 설치는 무조건 아들에게 책임지라 했다. 녀석은 결국 신통하게 자동차 렌트 계약부터 navigator 관련 일을 잘 해 내 주었다.
직원으로부터 잠시 설명을 듣더니 금세 차량을 파악한 듯, 공항 출구 근처 차량 진입로를 휘휘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던 준용이는 'Okay!!' 하며 상황 판단이 끝난 것처럼 자신감을 보인다. 이에 모두들 안도하면서 Ludwigshafen의 딸이 사는 집으로 향한다. 딸은 마인츠 대학원 석사 과정 1년을 마치고 방학 중인데 마침 대학원 기숙사로 거처를 옮겨야 했으므로 이번 렌트카 여행은 이삿짐 나르기에도 큰 몫을 할 수 있었기에 이래저래 탁월한 선택인 것 같았다.
네비는 독일어로만 안내해 주는데 도로 방향 표시가 미처 이해되지 못할 때는 통역해 주는 토니가 있어 네비 보는 일은 수월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렌트카는 우리가 한국에서 신청했던 차량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더 좋은 차종으로 새 차를 빌려주었던 것으로 내내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다.
딸이 살던 건물 14층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Rhein 강. 밤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어 여름밤을 즐긴다.우리도 이곳에서 한 여름밤을 즐긴다. 피자와 음료를 시키고 다섯명이 도란도란 독일에서의 하룻밤을 .... | tram 타고 슈퍼로...딸이 평상시에 하던 그대로 우리도 動線을 같이 하고 있는 중 주니가 버스 안을 열심히 촬영.. |
하이델베르크 Heidelberg
짐을 내리고 점심을 간단히 해 먹은 후 groupe 티켓으로 버스, 기차를 이용하여 하이델베르크로 이동. 5인 이상이면 그루페(group) 로 갈 수 있다. 그럴 경우 가격도 싸지만 또 독일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경험도 좋겠기에 트람과 기차로 하이델베르크로 갔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오래 전 유명세를 탄 지역이니 만큼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을 여행할 때 가장 먼저 가 보게 되는 관광 명소로 손꼽는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 전역이 폭격 대상이었던지라 언덕 위의 하이델베르크 古城이 온전할 리 없다. 23 년 전 겨울 하이델베르크에 와 본 적이 있는데 그 날은 마침 비가 내리고 추웠던 지라 제대로 수박 겉핥기 구경도 하지 못 했었다. 부서진 붉은 벽돌이 더 부각되는 城 내부도 음산하고, 한국 배낭여행족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잔뜩 낙서해 놓았기에 부끄러웠던 기억만 날 뿐이다. 그래서 Tram이 城 근처까지 이동하므로 접근성이 쉽기는 하지만 성 관람은 하지 않고 舊 시가지 골목을 누비는 것으로 이 예쁜 도시를 만끽하고자 했다.
네카 江을 사이에 두고 별장 지대와 신 구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교회를 빼놓고 유럽의 도시들을 이야기 할 수 없듯 여기서도 꽤 큰 규모의 교회가 있는데 교회 건물에 비해 훨씬 작은 입구 옆 게시판에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 공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누구라도 들어가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는데 아... 시간 상... 생략하기로 한다.
또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 건물들을 배경으로 한 골목길에는 작은 공원과 오랜 붉은 건물들과 키 큰 나무들,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카페 등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한 젊은 아빠가 생후 서너 달이나 되었을까 말까 한 아가를 한 쪽 팔로 옆구리에 끼고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데 하얀 피부에 큰 눈동자만 달롱 보이는 아가도 이미 편하게 적응되어 있는 듯한 모습은 신기해 보이기까지 한데 그들에겐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모습인 듯했다. 이 거리가 바로 괴테, 마크 트웨인 등 유서 깊은 하이델베크르 대학의 수많은 知性들이 지나다니던 이름하여 '철학자의 거리'라 한다.
네카 강변을 걷는데 우리를 보며 ‘니 하오’ 이렇게 외치는 이들이 있었는데 Asian 하면 늘 일본인으로 알고 있던 많은 이들도 이제 슬슬 중국인이 대세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녹색 숲 속에 마치 동화 같이 펼쳐진 대저택들과 구 시가지를 잇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하이델베르크는 저물고 있었다.
Karl Theodor Brucke(카를 테어도어 다리) | 구 시가지 쪽에서 바라본 Necker 강변 마을 |
7월 26일, Meztingen
아침 식사 후 곧 바로 떠날 계획이 틀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그 동안 비실거리던 욕실 수도 꼭지가 터져서 물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유학생들이라 겨우겨우 아무 일 없기만을 바라면서 귀국 직전인 7 월말까지 임대하여 살고 있었던 건데 결국 방을 비워줄 무렵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독일은 우리나라와는 참으로 다르다고 익히 들어왔기에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까 싶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말이 아니라 마침 금요일이어서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출근한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겨우 연락하여 전문가들이 다녀가는데 꼼꼼하다 할 지 여기저기 문제 생긴 부분을 사진을 찍고 연장을 갖고 오는 데만 두어 시간이 족히 걸린다.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또니가 살고 있는 8층에서 지하실 공동 세탁기를 사용하기 위해 빨래 거리를 들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살림 일 한 가지를 덜어낸다. 한 시가 아까운 터에 우리의 계획이 틀어질까 싶어 그들에게 열쇠를 주고 오늘 행선지로 떠나지만 마음 찜찜해 하는 딸내미. 독일어를 곧잘 하지만 아무래도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 때는 불편한 점이 많다 보니 이로 인해 피해를 볼까 봐 안절부절 하면서도 주님께 맡기고 떠난다.
이제 마인츠 기숙사에서 살게 될 거라 대충 짐을 싸고 친구네 집에 4 개의 box를 날라다 놓고 오늘은 남편이 운전석에 앉아 난생 처음으로 독일의 Auto Bahn 을 달린다.
메찡엔은 만하임에서 남쪽 슈투트가르트 지나 150 km 위치한 곳으로 대형 아웃렛 매장들이 들어차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어디를 둘러 봐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건만 막상 메칭겐 진입로에는 어디서들 몰려들었는지 자동차들로 가득하다. 7 월 말 대바겐 세일을 기다려 왔던 쇼핑객들로 인해 넓디 넓은 주차장은 이미 자동차들로 꽉 들어찼고 그 인파가 엄청나다. 마음껏 옷을 입어볼 수 있으며 물건 구매를 절대로 강요하지 않고 어느 판매원들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또한 온통 유명 브랜드인 물건 값은 서울에 비해 너무너무 저렴해서 쇼핑이 즐겁다.
또니는 이미 여러 번 이곳에 와 본 터라 잽싸게 알짜배기 장소로 잘도 골라 다닌다. 그럼에도 여행 경비 생각을 하다 보니 나에게 있어 구매는 어려운 것.. 다음 기회로 미루자 한 품목이 어디 한 두 개던가....셔츠 몇 벌과 아들 운동화로 아쉬움을 달랜다.
돌아오는 길은 국도를 이용해 마을 한 가운데로 들어서서 독일 마을들을 보며 깨끗하고 마을마다 꽃으로 가득한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부러움을 보낸다. 루드빅 사펜으로 돌아와 라인 강을 코 앞에 둔 ‘Taliania und Storia' 카페. 밤 9시가 넘으면 30% down 된 가격이란다. 예서 피자로 저녁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Metzingen Mall | Stutgard 방면으로 내려가는 Autobahn 에서 |
7월 27일, Mainz 음악 대학원, Ryudesheim
10월부터 마인츠 대학 기숙사로 거처를 옮길 예정인 또니의 짐 보따리도 꽤 많다. 혼자 살지만 필수적인 살림살이들이 있다 보니 이미 packing한 10개의 박스들이 있었으나 우리가 다시 남은 짐들을 포장한 것도 꽤 많다. 이것들을 두어 달 가량 맡아 줄 서너 명의 유학생들 방에 옮기는 작업을 마쳤다. 렌트한 자동차와 가족들 덕분에 힘들면서도 수월하게 짐을 옮길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드디어 마인츠 대학원으로 향한다. 독일 대학은 학교 별 편차가 없는 것이 특색. 건물들도 그다지 크지 않다. 방학 기간이라 대학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개성 있어 보이는 학생들이 오가고 있었다. 구내 식당에서 다른 학생들처럼 식판에 나오는 밥을 사 먹고 후식을 먹기 위해 케밥을 파는 터키 식당으로 향했다. 버드나무 科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이 카페 분위기를 돋우고 학생들은 모여 뜨거운 태양을 피하지 않은 채 진지한 모습으로 대화하기도 한다.
음악 대학 건물에 들어가 보았다. 정선이가 당시 입시를 치렀던 강당과 또 빨간색 의자들이 놓여 있는 로비로 들어섰다. 그 로비의 빨간색 의자에 앉아서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는 작은딸 또니... 독일 전역을 누비며 기차를 타던 중 발을 헛디뎌 철로와 플랫폼 사이로 빠져 심하게 다리를 다치던 일, 어디 그 뿐이던가. 바이올린을 포기해야 하나 싶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마인츠 음대 합격의 기쁨을 안았던 순간을 함께 회상해보았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딸 애의 연습실에도 들어가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면서 1 년 전 우울함과 기쁨이 교차했던 그 날들을 공유하였다. 꿈만 같았다.
빌헬름텔 동상 / in Ryudesheim | 와이너리 Big Winery |
마인츠에서 25km 위치한 뤼데스하임으로 이동
뤼데스하임은 '독일의 진주 또는 라인강의 진주'라는 별명이 붙여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음악시간에 익히 들었던 저 로레라이 언덕 덕분에 더욱 알려져 있는 마인 江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드라이브 코스가 정말 멋지다. 하지만 별다른 관광 정보도 미처 준비해오지 못하고 덜렁 달려왔기에 어디로 가야 할 지 설왕설래 하다가 ‘니더발트’라는 낯익은 지명이 보였던 지라 무조건 그 길로 향하였는데 운 좋게 제대로 길을 들어섰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로 올라가 보니 거대한 크기의 ‘게르만 여인상’과 '빌헬름 텔' 동상이 있다. 게르만족은 남성 뿐아니라 여인들조차 거칠고 강인한 DNA가 있는 것인지 자랑스럽게 여인상이 세워져 있다.
언덕 위로 들어서자 한 여름의 땀을 날려줄 살랑바람이 불어 주니 기분도 한껏 상승된다. 뤼데스 하임은 포도밭 농원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전망대 위로 올라가니 어디에서들 나타났는지 관광객들이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Seilbahn 이라는 케이블카를 타고 일단 내려가면 도시 골목과 곧바로 연결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강변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서 내려다 보니 어마어마하게 펼쳐진 녹색 카페트.. 손에 잡힐 만큼 가까울 만한 높이로 엄청난 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포도밭을 바라다 보았다.
이 고장의 풍요로운 결실의 상징인 포도. 이러니 맛있는 wine 이 어찌 아니 생산되겠는가. 케이블카는 단순 왕복 코스로 운행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도착하면 무조건 하차 하도록 만들어 도시 골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관광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관광을 해야 하는 모양새지만 골목 상권이 아주 볼만한 곳이 많았다. 골목 아래까지 내려가 보니 아까 우리가 달려왔던 그 드라이브 코스가 나온다. 동네를 나름 왔다리갔다리 하다보니 나중에야 지형의 생김새가 눈에 들어왔다.
케이블카 하차 지점에서부터 강변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은 언제라도 걷고 싶을 것 같이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곳으로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어느 노천 카페 앞마당에는 까만색 upright 피아노가 놓여 있고, 그 옆에서 감미로운 바이올린 연주가 감미롭게 울려 퍼진다. 음악이 흐르는 편안해 보이는 테이블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걸 보니 진짜 여행지에 와 있구나 싶었다. 와,...비록 고급 카페에는 못 들어가지만 관광객으로서 정말 즐겁기만 하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을 지나가노라니 차가운 유리 냉장고 안에서는 크림색, 핑크색이며 블루, 그린, 노랑, 갈색 등 컬러풀한 아이스크림들이 유혹한다. 아이스크림의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이것저것 다 맛보고 싶지만 겨우 한 개씩만 골라 사 먹으면서도 기분내며 혀 끝에 묻어나는 달콤함을 만끽하며 거리를 걷는다.
어느 winegarten을 지나치노라니 음악에 맞춰 노부부들의 댄스 파티가 신나게 진행되고 있다. 엉덩이 돌리는 모습이 예사 춤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老 할머니의 댄스는 관광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정원에 배치된 테이블마다 그들의 댄스에 박수를 보내며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이들이겠지.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모습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나?
7월 28일, 파리 Paris
일요일이라 거리는 한산하다. 휴일을 맞아 모처럼 느긋하게 늦잠들을 자는지 마을은 어쩜 그리도 조용한지...집 근처 빵집에서 치즈 듬뿍 넣은 빵과 커피로 브로케라 하는 독일식 아침 식사를 한다. 구수한 빵 냄새와 거리에 놓인 노상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빵 등으로 식사를 하는데 어디 우리 나라에서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가?
Go Go Paris!!! 파리 까지 521km 예상 거리. 고속도로는 한가한 편이라 얼마든지 운전을 할수 있겠다 싶은데 시원스레 뚫려 있어 시야 확보가 넉넉하다. 늘 파랗던 하늘이었건만 어째 흐릿하더니 오늘은 빗줄기가 굵어진다. 잠시 스산해진다. 국경 통과 관문 근처에서 히치하이크를 하려는 소녀가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Paris' 라고 쓰여진 종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우리도 파리로 향하고 있었으나 태워 줄 공간이 없다. 차창 밖에는 드넓은 평야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프랑스 국토 면적도 어마어마한 것 같다. (자료를 찾아보니 프랑스 국토 면적은 세계 47 위 정도로 우리나라의 약 5.5 배 정도 넓이다.)
Navigator 덕분에 어려움 없이 드디어 민박집 ‘내 이름은 파리’에 도착하였다. 도착 즉시 짐을 풀자 마자 파리 시내로 향한다. 동네 모퉁이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바게트 빵을 사 들고 갔는데 ... (아, 너무도 예상 외로 이 바게트 빵은 정말 얼마나 담배하고 쫄깃하며 맛있던지...)
지하철 티켓을 사는 일은 좀 복잡해 보인다. 동전을 이리저리 계산해서 넣는 일인데 귀찮고 잘 모르겠다. 뭐...우리의 멋진 애들인 정민이와 준용이, 그리고 유로화 동전을 뚜르르 꿰뚫고 있는 둘째 딸내미 정선이가 척척 알아서 하니 뭐... 또 들고간 파리 여행 책자를 손에 쥐고 타고 내릴 역에 대한 정보를 부지런히 퍼 나르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 한편 우리는 이제 등떠밀어진 세대가 된 기분도 든다. 이젠 그저 옆에서 애들이 하자는대로 처분만 기다리는데 편하기도 하고, 뒷전으로 물러선 게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사랑스런 애들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것도 몹시 기분 좋다...
오늘은 Paris 夜景 컨셉.
지하철은 좁고 덥고 어둡고 서울 지하철과 감히 비교 대상이 안 된다며 '서울이 최고'를 외친다. 좁아서 더욱 습한 지하철 내가 혼잡하다. 그 때 또니에게 껄렁한 여자애들이 몇 시냐고 물었다. 아니, 한 눈에 봐도 여행객인데 시각을 묻다니... 잠시 시선을 돌리게 하고 소매치기를 할 속셈이었던 듯. 하지만 또니가 눈치 채고 대꾸도 하지 않자 실패로 끝난 것 같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우리 쪽을 향해 눈 가장자리를 치켜올리더니 눈이 째진 동양 여자애라는 시늉을 하고 바로 下車.
바캉스 시즌에도 바닷가로 떠나지 못하는 Paris 시민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세느강 변 모래 사장. 짙은 청색 파라솔을 곳곳에 세워 놓고 이들은 해변인 양 벌거벗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파리는 정말 관광 수입만으로도 엄청날 것 같다. 어디를 올려다 봐도 흰 구름 가득한 파리의 하늘은 어쩜 그리도 파랗디 파란색을 펼쳐져 있을까? 뜨거운 태양이 종일 내리쬘 지라도 발 딛는 어느 곳이나 설렘으로 가득차 있었고 온통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청회색 건물들도 우리를 감동시킨다.
세느 강변을 따라 즉흥 공연이 많이 펼쳐지고 있었다. 흑인 그룹이 펼치는 댄스 공연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하고 우리도 맨 앞자리에서 잠시 관객이 되어본다. 자유자재로 흔들어대는 흥겨운 무대. 흥이 나는 이들은 함께 무대로 나가 춤 판에 낀다. 온통 벗어제낀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여성들과 셔츠 하나만 걸쳤을 뿐인데도 멋스럽기만 한 파리지앵들에게서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아, 내 눈 앞에는, 아니 우리 가족들 앞에 너무 좋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 아름다운, 멋진 파리가 펼쳐지고 있다.
파리의 야경 중 빼놓을 수 없는 조명등 깜빡이는 에펠 탑, 밤의 Eiffel Tower 는 매 시 정각마다 5 분 동안 조명등 점멸 이벤트가 열리는데 모두들 밤 11시를 기다리며 에펠탑 광장에 진을 치고 있다. 주로 흑인들인 에펠탑 모양으로 된 조잡하기 그지 없는 열쇠 고리를 강매하다시피 하지만 상술에 찌든 흑인들의 공세도 싫지 않다.
개선문 역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자 마자 사진 명소가 정해져 있는데 자동차가 오가는 한 가운데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여기서는 반바지에 하얀색 셔츠를 걸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세련미 넘치는 한 미국인 남자도 예외가 아닌 듯 우리 가족들 사진을 찍어 준 후 자신도 찍어 달라는데 그도 영락없이 파리에 취한 모습이다. 일터를 빠져나와 휴식 모드에 들어선 파리지엥들, 만국 관광객들 모두 파리의 여름밤을 즐긴다. 먼 길을 달려 왔으므로 엄청 피곤할 텐데도 정말 생동감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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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Go Paris | 세느 강변에서 아들과 | 우리집 남자들 |
몽마르트르 언덕, 시쾨르 성당, 노트르담 성당, 시청, 루브르 박물관 광장,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와 아베 크롬비 매장에 수두룩한 몸짱 판매원들이 인상적이다. 파리의 건축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려면 유람선만한 게 없다 싶어 'mouche bateau' 를 타기로 했다.
유람선을 타고 건축물들의 설명을 들으며 바라보는 건축물들과 다리들은 아주 그냥 예술이다. 'Pont Neuf 의 연인들'로 유명해진 9 번 다리를 비롯해 각각의 조각들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수 십 개의 다리들을 유람선에서 위로 올려다 보며 눈에 열심히 담아 두었다. 과연 모든 장면들이 오랫 동안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가능한 한 열심으로 바라다 보았다. 유럽 여행 중 Parsi나 Rome를 먼저 보게 되면 다른 곳들은 그닥 시원치 않다는 말을 실감한다. 유람선이 지나치는 다리 위에서 선 사람들과 유람선을 타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손을 흔들며 즐거워 한다. 여기서는 우리도 파리지앵. 그리고 맛있는 바게트 바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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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re Dam | Eiffel Tower | Rouvre 광장 |
7월 29일 프로방스 몽세규 Monsegue
Paris 를 떠나 이제 본격적으로 프랑스 고속도로를 달린다. 10여km 정도만 달리면 나오는 프랑스 고속도로 휴게소는 말 그대로 편한 쉼터 구실을 톡톡히 한다. 사실 자동차 밥솥까지 사들고 온 우리.. 밥솥 써먹을 일은 결국 없었지만 너른 공간과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간이테이블이 놓여 있어 소풍 나온 기분이다. 시원하고 너른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행복해졌다. 아이들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파리에서 580 km 정도 먼 구간이지만 어차피 하루를 드라이브에 쏟을 요량으로 떠난 터인 데다 몽세규 마을 현지 민박집을 찾을 일이 급선무인지라 먼 길 마다하고 가야 했다. 워낙 오지 시골이라 그런지 네비 입력조차 안 되어 있어 결국 출력해간 도로 안내 프린트물과 표지판을 보며 온 신경을 쓰며 가야 했다. 네비가 목적지를 정확하게 안내해 주지 못하는 통에 다섯 식구 모두가 인간 네비가 되어 프린트물과 표지판을 번갈아 보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을에 진입하면 일단 로터리가 많이 나 있는데 길 헤매는 사람에게는 꽤 유용한 듯하다. 방향을 잘못 들어서면 돌기만 하면 되므로. 길에 들어온 차가 절대 우선이며 로터리에 진입하기 전에 왼쪽을 잘 살펴야 한다. 고속도로는 일반적으로 파란색이고 국도는 초록색이나 흰색, 제한 속도는 구간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130km 속도를 요구한다.
프랑스 고속도로 상에 있는 쉼터..마치 소풍나온 것 같이 주변 환경은 깨끗하고 평화로워보인다. |
집 정원에서 꼬마들과 크로켓을 하는 아들 |
7월 30일 오랑주, 아비뇽, 셍 르미 드 프로방스 Orange, Avignon, St. Remy de Provence
몽세규 민박집은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한 저택이다. 사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이 몽세규 B&B 를 찾을 때까지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가도 가도 끝 없이 도착지는 안 나오는데 계속 시골길은 이어지고... 막상 도착지 주변에 오니 집들이 어찌나 크던지 동네 어디에도 도대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집집마다 들여다보며 주인 이름을 불러 댔는데 아... 그제야 그들이 알아 듣고 문을 열어 두었던 것이다. 그 때의 안도감이라니.... 우리는 혹시 잘못 예약한 게 아닐까 하고 안심되지 않았던 거이다.
몽세규 민박집은 로마 시대 즈음에나 있었음직한 크고 표면이 거친 돌덩이로 만들어진 집이다.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할머니 댁에 놀러온 아비뇽에서 살고 있는 세 명의 손주들이 와 있었다. 우리는 관광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밤에는 이들과 함께 노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또한 즐거웠다. 앞 마당 정원에서는 꼬마들이 크리켓 놀이를 즐기고 있고 중간 정원에는 작은 수영장 그리고 뒷마당에서는 식사를 한다. 운동 신경이 잘 발달되어 있는 준용이는 곧 크리켓 게임 룰을 익히고 그 프랑스 꼬마 애들과 합류한다.
손님을 맞는 즐거움을 보여주는 이들.. 노부부는 달기 그지없는 케익과 쥬스로 테이블 세팅을 해 놓았다. 테이블보 등은 매우 낡았지만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유럽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집 역시 꽃으로 가득하다. 마당엔 무궁화 나무가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석조 건물로 집안 내부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조차 투박하여 아늑한 맛은 적었으나 독특한 분위기를 내기에 충분했고, 프로방스 고유의 기조 색깔인 파스텔 풍 가구로 꾸며져 있다.
은퇴하고 시작한 민박 운영인데 이데 겨우 네 번째 민박 손님을 맞는다며 한국인 손님은 처음이라 무척 기대된다는 할머니는 우리가 들어서자 노란색 원피스와 노란색 구두로 갈아 신는 fashion 감각을 발휘하는 매너를 보였다. 손님, 그것도 꼬마들하고 잘 놀아주는 우리 애들이 있고 보니 세 명의 프랑스 꼬마들도 연실 싱글벙글.. 저녁 9시가 되어서도 환한 여름밤인데 캄캄해지기까지 정원에서 어렵사리 오래 전 배운 불어와 영어로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해 가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윽고 할머니는 다섯 살짜리 막내에게만 살짝 '이제 잘 시간'이라고 말하니 꼬마 여자애는 'Oui' 하며 그 즉시 2층 제 방으로 쪼르르 올라간다. 어쩜 그리도 말을 잘 들을까? 싶다고 물으니 할머니는 이층 다락방 창문을 가리키며 아마 정원을 내려다볼 거라며 손주들의 행동거지를 이미 꿰뚫으며 웃는다. 잘 교육 받은 걸 알 수 있었다.
손님맞이 선물이라며 맛있는 적포도주 한 병을 주었는데 푸른 곰팡이 치즈와 함께 마시는 와인에 그만 나는 정신이 아뜩하였다. 넓은 잔디밭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함께 wine 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갓길로 빠져들다 혼자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고는 금세 잠이 들었다는데... 애들이 '엄마!' 하고 찾아다니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술과는 거리가 먼 집안인지라 남편과 애들은 각각 집 안으로 들어갔으니.. 프로방스의 맑은 밤 공기와 고즈녁함을 즐기며 와인에 취한 기분 좋은 밤이었다.
뒷뜰 테이블에 차려진 프랑스식 아침 식사 | 반갑다며 간단한 스낵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점잖은 노부부 |
오랑쥬Orange
이튿날 아침 뒤 뜰에 있는 테이블에서 프랑스 식 아침식사를 했다. 정말 맛있는 푸른 곰팡이 치즈와 우유, 오렌지 쥬스, 맛좋은 살구와 빠질 수 없는 바게트. 2층에서 내려다 보니 노란색 테이블보와 초록색 잔디밭 그리고 예쁜 빛깔의 과일과 주스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프로방스 풍 색깔의 그릇들에 담겨져 있다. 내용물보다는 세팅이 더 아름다운데 눈과 입이 즐겁기만 하다. 한 쪽에는 탐스럽게 익어가는 중인 갈색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몰래 딱 1 개 따 먹음.
오랑주는 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대표적 도시로 레퀴브리크 광장으로 가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건립된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고대 극장이 있어 로마 시대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구시가의 Arc de Triomphe(개선문)이 있는데 오랜 석조 건축물임에도 갈리아 인과 로마 인의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새긴 부조가 정교하다. 파리 개선문은 이를 본따 세워진 거 같다.
프로방스 지역은 파스텔 톤인 살구색으로 둘러싸인 느낌을 받았다. 너무 덥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인지 낮에는 사람들이 별로 집 밖에 나와 있지 않다. 상가 중심지만 비교적 붐벼서 겨우 사람 구경을 하는 듯. 하지만 주차장마다 자동차들이 꽉 차 있어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에 비하면 다 어디에들 숨어있는 건지 싶었다. 고대 극장 바로 옆 glace 라고 쓰인 집이 유명하다는데 음식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우린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하지만 여행객들의 블로그를 보니 오랑주의 밤은 낮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밤 10시나 되어야 슬슬 도심으로 나와 콘서트를 즐기고 산책을 하는 모습들을 보니 이곳에서 숙박을 하지 않으면 못 볼 광경이다. 별 것도 없는 곳 같은데 지휘자 정명훈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이곳에 왔다니까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해 프랑스 남부까지 내려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또한 이곳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유명한 관광지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古代 원형극장 - Arle | Roman Style 개선문 |
Avignon(아비뇽)
아비뇽은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지명이다.세계사 시간에 공부했던..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아비뇽 다리위에서(Sur les pont d'Avignon)』라는 귀에 익은 프랑스 동요로도 잘 알려져 있다. 1188년에 만들어진 아비뇽 다리는 일명 ‘생 베네제 다리(Pont Saint Benezet)’ 라고도 부른다. 당시 목동이던 베네제(Benezet)는 꿈에 하나님이 론 강(江)에 다리를 놓으라는 계시를 듣고 주교를 찾아가 이를 전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믿지 않았는데 대신에 시험 삼아 거대한 돌을 론 강으로 옮겨 보라고 하자 그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혼자 힘으로 돌을 옮겼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고 함께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홍수로 다리가 무너지자 새로운 다리를 놓은 것으로 목동의 이름을 따서 <생 베네제 다리> 라고 이름을 붙였다. 17세기에 론 강이 범람하면서 22개의 아치 중에서 4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너졌으며 지금은 4개의 아치만 남아 있다.
아비뇽은 Region of Provence-Alpes-Cote-d’Azur 보클뤼즈 알프 꼬뜨 다 쥐르에 속하며 14세기 로마 교황의 거처로 당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로서의 번영을 누리던 곳이다. 난공불락의 요새로 아비뇽 시와 시를 둘러싼 성벽, 아비뇽 다리 근처에 위치한 아비뇽 교황청은 세계사 시간에 꼭 배우게 되는 교황이 쫒겨와 감옥에 갇힌 수치스러운 사건인 '아비뇽 유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교황청은 누구도 쳐들어 올 수 없는 난공불락 요새로 크고 두터운 돌덩이들로 건축된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아비뇽은 오랑쥬와는 달리 이글거리는 태양과 관계 없이 정말 사람들이 골목마다 바글거렸다. Ron 강 가에는 관광 버스들로 가득 주차되어 있을 만큼 대규모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인 듯.. 피카소가 그리도 좋아했다는 아비뇽. 그의 '아비뇽의 여인들'이라는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Pont St. Benezet - 본래 22개 arch가 있었으나 지금은 4개만 남아 있다.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멋진 포즈로 즐겁게 하는 Joony | 아비뇽 Avignyon 교황청-권세가 하늘을 찔렀던 교황들이었으나 나중에는 교황들을 아비뇽에 유폐시켜 프랑스 국왕의 권위를 살렸다. |
St. Remy de Provence 생 레미 드 프로방스
네덜란드가 낳은 천재 화가 반 고흐(Van Gogh)... 고흐는 이곳 프로방스 지방의 아를르에서 살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으나 겨우 37 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을 뿐이다. 살아 생전 아무도 그의 천재적인 예술성을 알아주지 않았던 때문에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가난과 정신병으로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다.
Vincent Van Gogh arrived on May 8, 1889 in Saint-Rémy de Provence, coming from Arles, to be "confined" by his wishes in the Saint-Paul de Mausolée Asylum. 이곳의 풍경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영감을 얻고 자신을 받아준 수도원의 수도사들의 사려깊은 배려에 안도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53주 동안 100점의 드로잉과 143점의 유화를 그렸다. 이 Saint Rémy에서의 시간은 반 고흐에게 있어 중요한 기간이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렸던 작품으로 잘 알려진 그림으로는 :
The paintings, amongst the most well-known :
"The Irises", "Starry Night", "Olive Orchard ", "Wheat field with Cypress", "The First Steps", "Wheat field with a reaper", "La sieste", "The Roadmenders", "Garden in the St-Paul hospice", "Vase with Iris",
"Vincent's Room in Arles" 등이 있다.
생 르미 드 프로방스는 고흐가 죽기 직전까지 1년 2개월 정도 머물렀던 요양원이 있는 아주 조용한 마을이다. 프로방스 여행을 오랫동안 그려오긴 했으나 정말 한낮의 강렬한 햇살 아래 걷자니 피곤하기도 하여 지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어차피 각오한 여행길 도보, 따가운 햇빛을 머리 위로 하면서 걷고 또 걸으니 '쌩 폴 드 모솔 정신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12세기에 수도원이었던 이곳은 1800년대 초에 정신병원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병원 바로 앞 언덕에는 고흐가 화폭에 담아냈던 삼나무와 올리브 나무 밭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던 빈센트 반 고흐가 이 나즈막한 언덕을 산책하면서 영감을 받아 화폭에 가득 담아냈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해바라기를 손에 든 깡마른 고호 동상이 우리를 맞는다.
고흐는 이곳에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삼나무와 하늘의 구름, 별과 달은 고흐의 정신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가장 특징적인 모티브로 자주 쓰이게 된다. 고흐의 수많은 그림들 중 너무도 유명한 그림인 '별이 빛나는 밤(Stary Night)'에 나오는 그 풍경들이 다 생 폴 드 모졸(Saint Paul de Mausole) 병원 근처를 묘사한 것 같다. 노랫말도 해석해보지도 않고 그저 곡이 좋아 좋아했던 팝송 '빈센트' ... 아차!!! 빈센트가 바로 고흐를 말하는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니... 좀 부끄럽기도 하다. 바로 옆 건물은 실제로 정신 병원이 있다. 이곳이 고흐가 머물렀던 요양원(물론 지금은 관광지)인 줄 알고 무심코 들어갔는데 어째 주위가 너무도 조용하기만 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병동에서 들려오는 정신질환자들이 질러대는 비명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어쩐지 입장료도 없더라니..
정신병원 바로 위쪽에 고호가 머물렀던 요양원은 입장료를 받는다. 낡은 건물의 2층에 자리한 고흐가 치료를 하기 위해 머물렀던 병실에 들어가 보았다. 문 앞에는 그의 정신병 치료를 위해 유일하게 사용되었다는 작은 욕조와 그가 누워 지내던 철재 침대가 있다. 키가 큰 사람은 혼자는 도저히 눕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철제 침대가 있다. 아니, 이곳이 그 천재화가가 죽기까지 병마와 씨름하며 치료 받았다는 병실이 맞는가? 좁은 병실은 그가 오히려 더 정신병을 키웠을 지도 모를 만큼 허접한 곳으로 이 작은 크기의 방에서 잠시나마 불행했던 화가의 말년을 생각해 보게 된다. 생전에 단 한 편의 그림 밖에는 팔리지 않아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고흐가 정신병을 앓아 귀를 자르게 되는 지경이 되는 동안 그 작은 철재 침대에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왜 사람들은 천재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그들의 고귀한 영혼을 다 쏟아붓는 작업을 알아봐 주지 못 하고, 죽은 다음 그를 다시 볼 수 없을 때에야 깨닫게 될까.
주차해 놓은 centre까지 오는 길은 이글거리는 태양 때문인지 다들 집에만 있는지 마을은 관광지임에도 온통 고요하기만 했으나 그래도 한 켠 작은 광장에서는 노인들이 페탕크(쇠공 치기)를 하고 있었다. 세느 강변에서도 젊은이들이 즐겨하고 있던 놀이로서 프랑스 전역에서 인기라고 한다. 정신 병동까지 이르는 길 이름은 '반 고흐 길'로 명명되어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노라니 뜻하지 않게 음악가 구노 Gounod 흉상이 마을 한 가운데 있다. 구노가 작곡한 <아베마리아>를 떠올리면서도 너무 힘들어서 구노가 이 곳 출생이구나 하면서 그저 지나치고야 만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입원해 있던 St. Paul de Mausole 병원 | 고호가 입원해 있던 병실에 놓인 철제 침대, 너무 작아 초라하기 그지 없다. |
아를르 Arles
비제, 빈센트 반 고흐, 세잔, 마티스, 피카소, 구노, 르느와르 등 숱한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프로방스. 이 중심에 아를르가 있다. 아비뇽에서 30분 거리. 비제의 오페라 <아를르의 여인>, 고호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Arles은 숨바꼭질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인상적인 골목길들로 이뤄져 있는 옛 도시다. 갈리아 총독이었던 케사르가 '갈리아의 로마'를 건설하고자 했으므로 로마 시대 유적이 많다. 원형 경기장, 야외 극장, 목욕장, 궁전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만도 7 군데나 된다고 한다. 투우도 볼 수 있다.
또한 고흐는 여기서도 1년 가량을 보내는데 아를르의 라 마르틴 광장에 있는 일명 '노란 집'이 유명하다. 지금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인지 그림에서처럼 애수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밤의 카페 같은 작품들이 Arles 에서 완성된다.
아를르 Arles 고대 원형극장여기서 지금도 투우가 열린다고 한다. | 고흐(Van Gogh)가 즐겨 찾고 또 그림으로 남긴 '작은 노란 카페'. 지금도 노란색 건물 그대로 남아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고흐의 그림에서와는 달리 낭만적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
8월 2일 Valansole(발랑솔), 베르덩 계곡
라벤더 꽃밭을 보는 게 프로방스 방문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였으나 보랏빛 물결과 향기에 취해 볼 요량이었던 나의 꿈은 발랑솔 평원에서 여지 없이 무너져버렸다. 사진으로 보면 지천이던 보랏빛 물결 속에 드러눕고자 했으나 라벤더는 7월 중순이 절정이라 한다. 결국 몇몇 군데서 미처 수확되지 않은 광경만 볼 수 있었다. 참으로 아쉬웠지만 그래도 라벤더 꽃향기는 바람결을 타고 다녔다.
발랑솔 마을을 지나 70 여km 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베르동 계곡. 굽이굽이 멋진 드라이브 코스임에는 분명하였으나 이미 발랑솔에서 너무 지치고 실망한 터라 베르동 계곡까지 가는 동안 너무 멀고 힘들었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산 속에 푸르디 푸른 호수가 있다. 호수 물을 가로막아 작은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깊숙한 산중이라서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고 크고 높은 나무들이 많아서 쉴 만한 그늘이 많았다. 실제 보다 사진이 멋지고 실제 보다 소문이 무성한 걸 다시금 깨닫는다.
-p.s.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금 베르덩 계곡에 대해 찾아보니 우리가 찾아간 곳은 협곡의 일부였던 듯 하다. 베르덩 협곡은 세계에서 두 번 째로 큰, 즉 미국 Grand Caynon 에 이은 어마어마한 곳으로 길이 20 km, 깊이 300 m 정도 되는 곳으로 이 긴 협곡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카누를 타는 등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 물론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협곡은 장관일 터였다. 너무 지친 나머지 호수를 보고 그만 그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지라.... 프랑스 남부 어느 지역에서도 진입이 가능하지만 특히 니스 쪽에서 훨씬 가깝다는 사실에 ... 이제 와서 왠지 허탕친 느낌... 헐 헐....
프랑스의 Grand Canyon ? ㅋ 일부.베르동 계곡 가는 길가의 호수에서 준용이 | 발랑솔 Valensol 라벤더 밭에서 비율 좋은 준용이와* 이 사진을 본 S가 '잘 생긴 저 분 뉘시요? 라고 묻는다. |
8월 3일 Aix-en-Provence, 카시스, 마르세이유
畵家 후기 인상주의 대표적 화가 폴 세잔의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 도시 전체에서 멀리 생빅투아르 山이 보인다. 시가지 중심부 미라보 광장 가운데 있는 분수대가 엑상 프로방스의 상징이다. 구(舊)시가지를 돌아보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물론 그라네 미술관 관람을 하고 꼼꼼하게 쇼핑까지 한다면 어쩌겠나만 우리는 엑상 프로방스의 자랑인 폴 세잔의 자취만을 찾기로 했다. 舊 시가지 맨 위쪽에 위치한 "세잔의 아뜰리에"를 찾아가는 길은 정말 너무 더워서 걷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나 아들 딸들은 엄마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니 엄마의 바램대로 따라가 주노라며 푸념 섞으며 걸었다.
기대감으로 찾은 세잔느 아뜰리에는 예상 밖으로 너무도 작고 입장료는 엄청 비쌌다. 모처럼 들르는 관광객들에게 덤탱이를 씌우는 듯한 느낌이다. 미술관도 아닌데... 하지만 세잔이 그렸던 각종 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생 빅투와르 산을 주제로 숱한 그림을 남긴 폴 세잔의 시간 속에 들어 간다. 고향 엑상 프로방스에 돌아와 소박한 일상을 그려낸 세잔. 그의 아뜰리에 앞 정원도 소박한 그림 소재 처럼 비록 협소한 듯 하다. 화실 밖 좁은 골목에 드리운 그늘이 멋스럽게 아뜰리에를 빛나게 해 주고 세잔을 추억하듯... 조용히 책을 읽는 방문객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Casis 해변 - 백사장이 아니다.. 자갈바ㅌ이다. | Cote-d'Ajour 지중해의 푸르디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 |
8월 4일 안시 Annecy
5박 6일 일정의 프로방스를 뒤로 하고 이제 안시로 향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향으로 되돌아 올라가야 하므로 중간 지점으로 택한 곳이다. 안시는 스위스 제네바가 35km 정도 거리에 있는 프랑스의 남알프스 지역으로 중세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고 좁은 길목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여행자를 즐겁게 한다.
알프스가 눈에 보이는 안시는 동계 올림픽 개최지 후보로 평창과 겨룬 바 있는 곳으로 프랑스에서 두번 째로 크다는 안시 호수는 얼마나 깨끗한지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인다. 거리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드넓은 공원에서는 그야 말로 진정한 휴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모습으로 가득하다. 공원 한 켠에서는 노인들의 댄스 파티가 열리고 있었는데 잘 차려 입은 노인들이 어찌나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지 참 이들의 노년이 부러웠다. 공원을 한참 동안 산책하고 왔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춤을 즐기고 있다. 한 도시마다 이틀 정도 여유롭게 보면 좋겠지만 시간에 쫒기다시피 하는 여행이라 구석구석 못 보는 게 아쉽다. 숙소인 IBis 호텔로 가는 길에 도미노 피자집을 발견하니 어찌나 반갑던지 ..여기서 산 피자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안시 Annecy 호수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중 하나정말 바닥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 백조가 유유히 헤엄쳐다니고 인파로 넘치는 Annecy Centre |
8월 5일 Strassbourg 스트라스부르
Google 지도에 여행 일정 루트를 수없이 그려 보았지만 독일로 올라가는 길은 그 어느 방향으로도 왔던 길을 되올라 가게 되어 있었다. 南 프로방스 지역의 고속도로는 여느 다른 지역의 고속도로와는 달리 남부 구간의 일정 구간은 외 길 고속도로로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네비는 Annecy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 國道로 계속 안내하는 바람에 잠시 헤맸다.
네비를 믿고 따라 가기에는 시간적 여유도 없고 무엇 보다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것 보다는 스위스를 거쳐 가고 싶었는데 네비는 자꾸만 U-turn을 하게 만들어 운전하는 이들을 무척이나 애를 먹였다. 다행스럽게도 어느 작은 주유소에서 영어를 잘 하는 택시 기사가 알려준 대로 무조건 스위스 로잔 표지를 따라가면 된다 해서 그대로 진입했는데 그것도 잠시 다시 유턴.. 준용이의 뛰어난 감각으로 회생.. .. 잠시 주위 지형을 살펴 보더니 고속도로와 국도 등 놓인 형국을 보며 금세 길을 파악하였다. 정말 센스쟁이 우리 아들이다.
運 좋게 우리의 렌트카 앞 유리에는 스위스 고속도로 패스인 비넷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기에 무사히 스위스 국경을 통과랄 수 있었다. 이 스티커가 무용지물이면 과다한 벌금을 물 수도 있다고 하여 내심 벌벌 떨고 있었는데 검문소에서 지나가도 좋다고 하는 소리에 우리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손뼉을 치며 와~아 !!! 하고 탄성을 질렀다. 다들 무심하게 차를 타고 다녔건만 그래도 자동차에 워낙 관심이 많은 준용이는 앞 유리에 부착되어 있던 초록색 스티커를 예사롭게 지나치지 않았던 것이고 혹시 이게 스위스 통과 비넷일 지도 모른다며 엊저녁에 한 마디 했던 터였다.
어쨌든 몇 만원씩이나 하는 비넷을 무료로 이용했다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스위스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에 흥분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비넷(vignette)은 1년 유효 기간이므로 누군가 사서 붙인 렌트카였던 것 같고, 바로 그 혜택을 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네비는 여전히 프랑스 국도를 안내하기 때문에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마을 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겨우 간 곳이 프랑스 국경 마을.. 하는 수 없이 왔던 길 되돌아 오기로 하고 아껴 두었던 다운로드 해 간 로커스 맵을 부가로 이용하여 스위스 제네바 로잔 바젤을 거쳐 400 여 km를 달리면서 스위스 마을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는 것도 즐거운 여행이 되어 주었다.
스트라스부르 Strassbroug
십 수 년 전 우리 잠실교회 임마누엘성가대 지휘자였던 김주현 피아니스트가 자신이 유학 시절 다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바로 스트라스부르였다며 이 다음에 꼭 가 보라는 말을 귀담아 들은 이후부터 늘 꿈꾸어 왔던 곳이 바로 스트라스부르.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별’을 근거로 하는 마을에 대한 설렘. 스트라스부르는 전쟁으로 인해 한 때는 프랑스에, 한 때는 독일에 예속되었던 지역으로 프랑스 풍의 아기자기한 도시다. 동화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마을이 컨셉인 '쁘띠 프랑스' Le Petit France 마을에 들어서자 마침 카메라 맨과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영화 촬영 현장을 볼 수 있었다. 폭이 좁은 강 건너편에서는 너무도 예쁜 정원과 음식점을 배경으로 남녀 배우들이 데이트 하는 장면을 촬영 중이었는데 남자는 꽤 잘 알려진 배우라고 하였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들이 배우가 누구냐고 그들에게 물으니 감독 쯤 되어 보이는 이가 웃으며 '아놀드 슈와저네거' 라고 농담을 한다.
스트라스부르는 알자스 지방의 수도로 교통의 요지로 기차로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시내는 전차, 지하철이 다닌다. 신성로마 제국이었으나 프랑스에 합병,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으로 독일군이 점령했는가 하면 다시 프랑스 독일이 번갈아가며 점령한 지역으로 따라서 특성상 프랑스어, 독일어가 사용된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도시 전체가 동화 속 마을 같고 파리와는 사뭇 다른 프랑스를 느낄 수 있다.
세느 강보다는 훨씬 작지만 역시 유람선이 있어서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돌면서 스트라스부르 중심 건물들을 잘 볼 수 있었다. 한 중간 정도 쯤 유람선이 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번개가 치고 천둥이 쿵 쾅 내리치는 등 장난이 아니었다. 선원들은 손님들에게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하늘색 우비를 나눠 주었고 비가 더욱 세차지면서 몇 분 동안 다리 아래에 배를 정박하고 기다리는 등 예상치 못한 weather 에도 관광객들은 어찌 즐겁지 아니할쏘냐. 구텐베르크 광장에 있는 붉은 벽돌 건축물인 노트르담 성당은 1190-1880년까지 약 700 여년에 거쳐 건축된 건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인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저 걸작물(傑作物)에 대한 경이로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노트르담은 Notre Dame 귀부인 즉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며 전반적으로는 성당을 지칭하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뾰족한 첨탑, 西쪽 門들은 고딕 양식이며 독일 점령기엔 개신교였다가 지금은 프랑스 국교인 카톨릭 교회로 142m 높이로 200년(1620-1850)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
민박집 부근엔 큰 Lydl 마켓도 있는데 도대체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창 밖을 보니 아주 오랫만에 붉은 저녁놀이 걸려 있는 하늘이 열려 있다. 노을 풍경을 가슴에 담아 두려고 자꾸 보고 또 보았다. 이튿날 오전 관광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주인 여자가 하는 말... '파리 여자들은 콧대가 높아서 목을 곧게 세우고 다닌다. 그녀들은 외국인한테도 거만한 편이지만 스트라스부르 여자들은 polite 하다며 Paris 여자들과 자신들을 비교하였다. 전 날 주인이 숙박관련 홈피에 잘못 올려 놓은 집 주소로 인해 엉뚱한 곳에 가서 집을 제대로 못 찾아 1 시간 이상 동네를 돌며 애를 태웠던 걸 생각하면 있는 대로 열 받았지만 이들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바람에 ... 마침 이층 집 어떤 친절한 분이 내려와서 우리가 갖고 있는 주소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주인에게 연락해 주어 정확한 주소를 다시 받아냈던 것이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게 추억이다. 시간이 허락되면 Albert Schweitzer 박사가 태어난 곳까지 찾아가려 했는데 비도 오고 여의치 않았다.
Le Petit France 동미니 |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는 Joony ... |
8월 6일 Mannheim 만하임
정작 만하임 시내는 그닥 관광지로서 알려진 곳이 아니라서 정작 떠나오기 전 날에야 만하임 밤 거리를 거닐어 본다. 내일이면 가족 첫 해외여행에의 추억을 안고 돌아가야 하는구나 하며 다들 아쉬워했다. 사실 좀 아껴 보겠다고 먹거리에 돈을 너무 아꼈던 것과 좀더 Route에 대한 계획을 꼼꼼하게 세웠어야 했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다시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 땐 좀 더 잘 먹자는 애들의 말에 끄덕이면서 미안한 마음 가득했다. 또니 역시 이제 만하임을 떠나 마인츠에서 1년을 둥지를 틀 예정이어서 만하임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 안녕, 만하임!
여행을 마무리하며 마지막날 만하임 Manheim 분수대 앞에서 |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에서 다시 만하임으로 오는 중... 너른 들판이 마음도 넓게 해 준다. |
8월 7일 Frankfurt Out
만하임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가는 중 각자 여행 소감을 내놓았다. 자연스럽게 남편이 이야기를 꺼낸다. 초반에 네비에 익숙하지 않아서 엄청 지청구를 받은 아빠. 이젠 세 아이들 어디를 내 놓아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하지만 한편 자신은 이제 퇴진해야 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막상 서운하고 서글퍼진다.
공항에서 그 동안 든든한 발이 되어 준 렌트카 'Volkswagen' 을 반납함. Aix-en-Province 에서 주차를 하다가 사실은 앞 범퍼가 눈꼽 만한 상처를 입었기에 반납하면서 엄청난 penalty 를 물 각오를 했었는데 .. 왠 일? 왠 일??? 흰 머리 숭숭한 풍채 좋은 렌트카 직원은 이를 보더니 상관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와!!! 무사히 자동차를 반납했다는 ... 여행 중 자동차에 관한 한 '玉의 티'가 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어찌나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던지.. ㅋㅋ
또니는 하루 늦게 대한항공 편으로 귀국하고.. 우리는 하루 먼저 귀국... 공항에서의 tax refund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비행기 놓치기 직전까지 허둥댐... 그리고 기내에서는 벌써 다음 여행지에 대한 talk talk ........
인천 공항 Baggage Claim | in Arles |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하고 싶어 늘 안달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다섯 식구가 함께 .. 온 종일 함께 한 시간들과 추억담을 ... 어떤 얘기를 해도 서로 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함께 함... 다시 그런 시간을 갖고 싶다고 되 뇌인다. 잊지 못할 가족 여행을 허락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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