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여 남짓 매 월 진행되고 있는 여고 동창 걷기 모임은 카페지기 친구인 명자의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이번 5월 걷기 모임은 송파구 마천동에 위치한 <천마근린공원> 산림치유센터에서 진행하는 숲속 오감 힐링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일찌감치 정형외과에 들러 말썽쟁이 엄지발가락 치료를 받은 후 마천행 전철 탑승.. 몇 달 전부터 관절연화증으로 인한 통증으로 괴로워했는데 차츰 나아지고 있어 이렇게 걷기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게 감사했다. 카톡 난독증 엄마로 늘 지청구를 듣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또 공지사항을 숙지하지 않아 결국 거여역 하차를 놓쳐 버렸다. 요즘 자꾸 이런 실수를 하는가 싶은 마음에 老年으로 가는 길을 걷는 중임을 확인하는 것 같아 잠시 씁쓸했다.
거여역 부근 <東村>에서 보리밥, 돈가스 점심 식사.. 늘씬 화끈한 향순이가 9명 친구들의 점심을 빵!! 쏘았다.. 고마워.. 잘 먹었다. 이제 지공맨들 아니랄까봐 겨우 한 정거장 구간을 전철로 이동하였다. 수십 년간 송파구 언저리에서 살아왔고 마천동 부근도 쭐레쭐레 다녀봤건만, 세상에! 상전벽해라더니!...를 반복하며 깔끔한 전원마을 분위기로 탈바꿈한 마천지구에 눈을 휘둥그레 굴릴 밖에 없었다. 송파, 위례신도시 및 하남 감일지구로 이뤄진 삼각지대의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들어선 고급아파트 군의 위용에 압도되다시피 하며 산림치유센터에 도착하였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숲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는 건 전혀 알지도 못했지만 또 뭐 별다른 게 있을까 싶었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Great!!!
이 모임을 주관한 회장 서경희의 동문이라는 푸근한 인상의 숲 해설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단단한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받아든 우리는 5월 싱그럽기 그지없는 숲길에 들어섰다. 숲속 생태를 이루고 있는 초록이들에 대한 해설을 듣는 동안 자못 진지한 학생들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귀기울이던 6학년 우리를 보고 강사님은 인심 쓰듯 후한 점수를 주었다. 흔히들 도토리나무로 불리우는 참나무 6형제(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를 시작점으로 하여 오르막 숲길을 걷는 1시간 남짓한 동안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 |
![]() |
![]() 정상 데크에서 잠시 눈 붙이기
|
충희가 찍은 사진들 |
주로 천마산에 자생한다는 독특한 모양의 하얀 꽃이 피는 백선, 이름도 재미있는 으아리, 작은 팥알만한 방울들이 쪼르르르 나란하게 매달린 빗자루 모양의 방울빗자루, 김유정의 [동백꽃]에서, 실은 동백꽃이 아닌 알싸한 향과 노란색 꽃이 피는 생강나무 등 저마다 지닌 나뭇잎들의 향기를 맡고 부드러운 이파리들를 만져보기도 했다. 자그마한 산이지만 제법 숲이 우거져 5월 하순 숲길은 적절한 그늘을 선물하였으며, 인공적으로 만든 데크가 없는 진정한 흙길이어서 오롯이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숲길 중간 지점에 이르러 독특한 어울림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자작나무 科에 속한 물박달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서로 자신의 몸집의 크기와 키를 조절하여 수관(Crown)들이 맞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서로 배려하여 공존한다는 생태계의 겸손한 일면을 보여주는 크라운 샤이니스(Crown Shyness) 현상에 대한 설명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겨우 140m 높이의 낮은 정상에 오르니 멀리 하남과 마천지구를 조망할 수 있는 안성마춤 쉼터가 나온다. 구름이 흘러가는 맑은 하늘 아래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보노라니 좁아진 시야가 넓어지는 듯하였다. 그래, 이것이 힐링이라는 거겠지. 발이 아파 어디도 못 간다고 불평하고 서글펐는데 이렇게 숲 여행에 동참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채 몇 미터 더 올라가니 꼭 필요한 만큼의 널찍한 데크가 깔려 있었다. 이 데크에서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로 깊은 호흡으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면서 잠시 눈을 감고 눕는 시간을 가졌다.
돌아오는 길은 훨씬 수월했음은 물론이다.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서는 해설사님이 제공한 카모마일 차 한 잔으로 짧은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친구들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지 이구동성으로 단풍 들 무렵 다시 오고 싶다고들 했다. 이제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진행될 판이었다. 이윽고 ‘아나바다’ 경매 시간.. 옷이며 악세사리, 우산 등을 내놓은 친구들과 이 물건들을 기꺼이 사고 그 금액은 회비로 입금된단다. 이 또한 명자가 바람잡이.. 하하호호 ..날씬한 누구는 심지어 44 size면 자신이 다 사겠다고 하는데.. 수십 년을 다이어트 타령으로 보낸 나는 할머니 티가 전혀 나지 않는 그 호리호리함이 부럽기만 했다. 평소 귀걸이를 하고 싶었다는 순둥이 경남이가 번쩍이는 귀걸이를 사고는 이제 이에 걸맞는 드레스를 사겠다는 파격적 발언을 하였다. ㅎㅎ
적절한 피곤함을 걸친 채 다시 마천역으로 되돌아오는데, 공짜 화장실을 제공하고 있는 <행복한교회> 바로 옆 담장에 넝쿨장미가 찐찐 분홍빛으로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장미꽃이 만발한 계절이기도 하지만 그중에도 길가에 늘어선 줄장미들은 5월의 여왕이라는 찬사에 부응하듯 화사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또 감성 충만 충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집을 나서면서 동네에서 마주친 넝쿨장미에 홀딱 마음을 뺏겼던 기쁨을 놓치지 않고 버스 안에서 급히 한 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시인으로 등단한 충희가 자작시를 낭송하는 동안 8명의 친구들은 걸음을 멈춘 채 넝쿨장미 흐드러지게 늘어진 담장 옆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미숙이도 질 세라 이해인 시를 낭송하니 오늘 모임의 하이라이트이런가? 아름다운 이름 ‘벗’들이 박수를 보냈다.
![]() |
![]() |
![]() |
치맥과 건배 < 충희가 찍은 사진들 > |
파장 시간이 되자 근처 마천시장이 요즘 보기 드문 재래시장이라며 귀가 길 장 보기에 돌입할 테세이면서도 헤어지기 서운해 같은 자리를 맴맴 돌 바로 이때, 충희가 마침 오늘 생일을 맞은 친구를 위해서라도 치맥을 쏘겠다고 한다. 와우! 이를 마다할 친구 어디 있겠는가.. 시장 근처 치킨집에서 치킨 한 조각에 생맥주 거품 입에 물고 소박한 건배를 했다. 고교 시절 깔끔하고 반듯한 외모로 인상적이던 규율부원 문숙이가 금테 안경 예쁘게 쓴 귀부인답게 슬며시 밖으로 나가더니 케잌을 사들고 왔다. 어머나! 계속 기분 좋은 탄성이다. Happy Birthday to 친구!.. 축하노래를 부르니, 옆 좌석에 있던 몇몇 손님들도 함께 박수를 쳐 주는 등 기분은 한껏 고조되었다. 그깟 맥주 한 잔에 문숙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어쩔 줄 몰라하는데, 나는 끝까지 멀쩡하여 웬만한 술꾼쯤으로 오해받을 만하다. 분명 빙상선수였는데 특수학교 교장으로 퇴임하고 미국 횡단여행을 한 재미있는 인생담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강영자를 비롯하여 학교 다니는 동안 말 한 번 나눈 적 없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각자의 여건에 따라 걷기 모임으로 인한 만남으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익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또 5월은 간다. 숲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맑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을 터이고, 배우는 6학년들이 되어 깔깔대던 웃음 소리에 숲속 나무들도 흐뭇해 했을 것만 같다.
![]() |
![]() |
|
명자가 찍은 사진들-충희의 자작시 낭송에 귀 기울이는 친구들과 흐드러지게 피어난 덩굴장미 | 자작시 낭송에 귀 기울이는 모습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新婦 (0) | 2015.06.03 |
---|---|
세탁기 만은.... (0) | 2015.02.25 |
'한양 都城을 만나다' (0) | 2015.02.06 |
작은딸 심정선, 또니가 연주하는 찌간느('Tzigane' by Moris Ravel) (0) | 2015.02.03 |
큰딸 아이 婚事를 앞 두고 (0) | 2015.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