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2~16일까지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교사 연수 프로그램인 <한양 도성을 만나다> 직무연수에 참여한 5일 동안의 행복했던 시간들.. 에이.. 설마 행복? 하다라고까지 ??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5일 내내 행복하다고 되뇌였을만큼 이 강의를 즐기고 또 즐겼다.
겨울 방학.. 별다른 스케줄도 없는 지라 마냥 게을러지기 쉬웠지만 '한양도성' 이라는 옛스런 단어에 이끌려 신청하게 되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교수님들의 수준 높은 강의와 성실하고도 진지한 열의와 함께 40명의 교사들도 질 세라 열심히 참여한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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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 부지에서 발굴된 <오간수문> 자리 |
목멱산 Photo Zone에서 바라 본 백악, 인왕산 한 눈에 들어오는 母校 숭의여고 |
복원된 숭례문에 연결된 성곽 소실(燒失), 복원 과정에서의 부패로 얼룩진.. 어설픈 현판 |
첫째날
** 한양도성과 도시 유산 / 송인호 교수(서울시립대)
한양도성(City Wall) : 18.627 Km
한양 도성은 仁義禮智 를 각각 동서남북 으로 배치하여 門을 세우고 그 門을 잇는 성곽을 말한다. 동쪽으로는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남쪽 숭례문, 북쪽은 숙정문이 대문이요 그 사이에 각 小門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을 가리키는 말로 京兆, 경성, 한양 으로 지칭했다. 한양도성은 1405년 태종이 개경으로부터 환도한 후 도성 한에 있던 신덕왕후의 정릉을 성 밖으로 이장하고 개천도감을 두어 개천을 정비하고 1412년 시전행랑을 건설하면서 이후 도성을 갖추게 되었다.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하면 2016년에 그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데 한양도성으로 명명하면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태조실록>에 도성의 남문, 즉 숭례문이 완공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니 조선 건국 때 시작되어 세종때 완공되었고 한다.
** - 한양도성의 위상과 역사 /홍순민 교수(명지대)
서울의 중요 요소는 바로 종묘와 사직이다. 宗廟는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국가적 차원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사직은 국토의 神과 곡식의 神을 모시는 제단으로 국가 자체를 상징한다.
둘쨋날
** - 지도로 본 서울 / 양보경 교수(성신여대)
많은 옛지도를 보고 지도를 읽는 방법 등을 배우면서 지도가 있어서 옛모습을 상세하게 고찰해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그 중에도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의 훌륭한 면모에 대해 살펴본다. <대동여지도>가 겨우 全紙 정도의 크기라도만 생각해 왔던 생각을 와르르 무너뜨린 시간이었다. 성신여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여지도>는 보물 제850호로 지정되어 있어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니 실제로 그림을 본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1861년(철종 12년)에 초간본(初刊本), 1864년(고종 1년)에 재간되었다.
* 분첩절첩식 <대동여지도> : 세로(남북)가 22첩(帖), 가로 19折로 되어 있다. 이를 모두 연결하여, 병풍처럼 접어 휴대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다. 1절은 책 1쪽에 해당 하는 크기로 <대동여지도>의 전체 크기는 가로 4m, 세로 8m에 이르는, 우리나라 고지도 중 가장 큰 목판본 전국지도이다.
* 大東輿地圖
'대동(大東)'이란 청구(靑丘), 해동(海東), 동국(東國), 사해(四海), 삼한(三韓), 팔도(八道) 등과 함께 조선(朝鮮) 곧 우리나라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여지(輿地)'란 '수레같이 만물을 싣는 땅'이라는 뜻으로 국토(國土)를 의미한다.
김정호는 당시의 각종 지도를 취합하여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여 그의 나이 30여세 때인 1834년 전국지도인 <청구도>를 제작했다. 이후 20여년간에 걸쳐 <동여도>(東輿圖, 23첩, 필사본)로 보완·발전시켰으며, 나이 60에 이른 1861년 이 <동여도>를 그대로 목판에 옮겨 <대동여지도>라는 최고의 걸작품을 완성하였다.
답사 구간 : 낙산 성곽길
NGO 활동단체인 KYC 하준태 대표가 동대문에서 혜화문에 이르는 답사 코스 내내 열정적으로 성곽 얘기를 들려주었다. 크고 선해 보이는 눈매와 밝은 미소로 시종 한양성곽의 면모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설명해 주는 모습에서 자원봉사자의 순수한 열정이 보였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한양성곽에 대해 알아가고 옛것을 통해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뿐만 아니라 후세까지 이어지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잘 될런지.
셋째 날
** 한양도성과 문학이야기 / 한양도성의 문루와 문학(허경진 교수/연세대학교)
시조 를 포함한 조선 문학작품을 통해 한양도성을 본다. 한양도성은 한강 북쪽에 內四山(낙산, 인왕산, 목멱산, 북악산)과 어우러지게 쌓았으며 전쟁을 연관시키는 성곽이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문학작품에 표현되어 있다고 함. ** 外四山 : 용마산 덕양산 관악산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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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여러 사람이 들고 겨우 함경도 지방을 펼치고 있다. |
각자성석(刻字城石) : 축성 감독관과 책임기술자의 이름이 새겨진 일종의 공사실명제. 동대문 에서 시작되는 낙산구간 초입 |
휘호에 쓰이는 漢字들 |
넷째 날
** - 한양도성의 축성술과 발굴성과 /김병희 특별연구원(세종대 박물관)
'동대문운동장역'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게 된 배경 및 청계천이 끝나는 지점인 이곳에서 넓어진 물길이 빠져나가도록 만들어진 五間水門이 발견되었고 옛 서울운동장이던 이곳에서 동대문과 광희문을 잇는 성곽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태조 때 축성된 도성은 돌 모양이 반듯하지 않다. 세종 때: 직사각형 , 숙종 때는 돌의 크기는 다르지만 정사각형 모양으로 축성되어 그 흐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정사각형으로 쌓았을까? 돌을 나른 갯수를 계산하여 품삯을 주기 위해 규격화 했다고 한다. 각자성돌 은 숙종연간 성벽에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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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을 한 눈에 | 옛 지도로 본 한양 | 옛지도에 나타난 청계천 |
다섯째 날
** -옛 그림 속 한양 / 이태호 교수(명지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발달과 함께 보는 서울 풍경의 아름다움을 부제로 한 강의
이 시간은 정말이지 너무도 재미있었다.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므로 오로지 그림으로 서울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림 속 특히,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타난 한양은 참으로 멋졌다. 미술관에서 그림들을 보노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을 그림들을 이제 설명을 통해 들으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조선 후기 화가들이 조선의 名勝을 화폭에 담았는데 이것을 진경산수화라고 한다. 즉 실재하는 풍경을 그렸다는 것이니 자연 그림 속에서 한양이나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또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사 및 풍습을 엿볼 수 있다. 특별히 겸재 정선은 문인관료 출신으로 벼슬살이를 했다가 인생 후반인 60~70대 무렵에 왕성하게 그림을 그린다.
과연 겸재는 현장을 답사하고 그림을 그렸을까 싶을 정도로 그림은 실제를 닮았다고 한다. 진경산수의 완성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는 <인왕제색도/겸재>를 들 수 있다고 한다.
이태호 교수는 자신이 전문 화가 대신 강단에 서는 교수를 택하게 된 배경을 들려주면서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 생각의 나무 刊 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했다. 그런데 이 책들은 이미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렵다는데.. 혹여 헌책방에서 만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리고 인생의 후반부에 미술대학원 또는 평생교육원 같은 교육기관에서 이렇게 옛 그림을 통해 우리 것을 알아가는 행복한 노년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 정말이지 그러고 싶다.
둘째, 마지막날에 각각 낙산길, 남산길을 답사하면서 낙산과 목멱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스카이 라인을 조망하였다. 내가 생각나는 60년대에서 80년대의 서울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엄청나게 변한 서울이다. 서울에 살면서 한양성곽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는 게 뿌듯했다 그리고 참 많이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장충동에서 남산 팔각정에 이르는 성곽길의 실체.. 그리고 봉수대 .. 오른쪽 아래로 40년전 다니던 모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Photo Zone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감개무량했다. 아 . 저곳을 6년간 하루도 지각 결석한 적 없이 참 잘도 다녔구나 싶었다.
운 좋게 한양도성을 만나다 라는 연수에 참가하면서 내내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어 행복하다 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유익하고 재미있는 사실을 몇 몇 사람들만 알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참 많이 모르고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함께.... 찾아보면 '궁궐' 관련 프로그램 등 많다고 하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얼마 전 동생네 부부와 함께 낙산 성곽길 걸으며 짧은 지식이나마 함께 나누었다.
한양도성을 만나다 프로그램 일정표 | (타)락산에서 바라본 都城 안 멀리 인왕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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