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1(Wed), 2012
고교동창들 또는 母校 홈페이지를 통해 간간히 옛 은사님들에 대한 소식을 들어 왔었기에 그다지 낯설다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당당하게 동창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았던 지난 날들이었다. 목멱산 기슭에서 보낸 6년 간의 그리운 학창시절. 누군들 자신의 10代를 보낸 중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없으랴만...50 대 후반 길목에 선 지금까지 당시 우리들을 가르쳐주셨던 옛스승님들과의 만남을 계속하는 이들이 흔치 않으리라. 이번 만남을 이끌어주신 분은 고2 때 담임이셨던 남상학선생님이다. 고등학교때 학업과 관련된 이런저런 소소한 기억들이 있는데다가, 모교의 100주년 행사에 참석했던 여러 동창들에 비해 초라하게 보였던 지 나에게 툭 던지신 한 마디는 마치 그 동안의 내 삶을 지켜본 것처럼 내 표정에서 나의 삶을 알아내신 것만 같다.
차마 다 쓸 수 없을 만큼 힘들게 살아왔던 ,, 그래서 늘 주눅들고 소심한 나는 꽤 오랜 동안 선생님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체 했었다. 2008년 6월말 쯤.. 대학원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듣고 얼마간의 흥분과 아쉬움으로 교정을 나섰을 때의 그 느낌을 하필 옛 담임선생님께 메일로 띄웠더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닥 내세울 것 없는 내 모습과 얼마간의 자격지심으로 인한 서운함 등.. 뭐 이런 것들을 떠나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늦깎이로 대학원 공부를 마친 내게 대견하다시며 또한 행간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헤아릴 수 있다시던 답 메일을 받고 뺨이 쓰리도록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내렸었다.
바로 그 은사님께서 특별히 시간이 되는 친구들에게 한 턱 쏘시겠다시는데 염치 없지만 때마침 방학 중이기도 해서 얼싸구나 하고 참석하였다. 잠실운동장역에서 출발하여 두어 시간 남짓 양수리를 거쳐 춘천까지 가는 길은 평일이라 자동차들도 별로 없는 데다 날씨마저 청명하여 드라이브 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북한강을 따라 달리는 내내 운전하시는 선생님께 죄송하다며 뒷좌석에 앉은 고2때 짝꿍이던 친구 김명자, 김영심이는 좌불안석하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모르는 체 바깥 풍경만을 바라보며 오랫만에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만끽하고 있었다.
일흔을 훨씬 넘긴 분이라고 하면 老人이라 생각하겠지만 南선생님은 나이에 비해 얼마나 젊어보이시는지 두리뭉실 아줌마인 내가 오히려 샘이 날 지경이다. 교장 선생님으로 퇴임을 하시고 또한 詩人이면서 교회 장로님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부러운데 한 술 더 해 보란 듯 잘 키워놓으신 자제분들과 총명한 손자 손녀들로 화목한 家庭을 이루시어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계시다. 퇴임 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분들과 여행 벗들이 되어 두루 세상 구경을 다니시는가 하면 그 연세에 blog 운영도 짱! 이다... 수많은 제자들이 선생님의 자상함과 배려에 감동하고 지금까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작년에는 자서전 형태의 수필집 <아름다운 동행/남상학 지음>을 출간하셔서 내게도 한 권 보내 주셨다. 나는 답례로 일종의 독후감을 샘께 올려 드렸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A학점을 주셨다. 선생님과 만난 지 햇수로 40여 년.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은사님을 뵐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國語 선생님답게 우리를 데리고 가 주신 곳은 김유정 문학촌, 돌아오는 길엔 양평 <황순원 문학관>에 데리고 가 주셨다.
김유정문학촌 본관 맞은편 실레마을 | 양평 황순원 문학관 |
김유정문학촌을 나와 驛 부근 허름한 '시골장터'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고고싱. 도토리묵과 순메밀국수 맛은 정말 별미였다. 아, 동동주도 한 잔....체면이고 뭐고 나는 한 그릇을 뚝딱 다 비운다. 작가가 태어나 살던 곳을 문학촌으로 형성한 김유정 문학촌과 달리 양평 소재 황순원 문학관은 산으로 둘러싸여 분위기도 멋지지만 현대식 건물이 훌륭하다. 서울로 오는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황순원문학관에서 머문 시간이 짧아 영상물 한 편 못 보고 나온 것이 좀 아쉽긴 하다. 황순원의 대표작의 하나인 '소나기'에 소년이 좋아하던 계집 아이가 이사간 곳이 양평읍이라는 내용을 근거로 하여 이곳에 황순원 문학관이 지어졌다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관람객은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고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이러한 문학관을 들르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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