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弟夫

라일락74 2021. 7. 30. 14:21

 6월 29일 오후.. 동생 창복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라!! 평일 이 시간에 왠일이냐고 물으니 '아직 연락을 못 받았나보네..' 라고 말한다.  무슨 연락?????  한 옥타브 쯤 낮춘 듯한 목소리 너머로 이미 무언가 겉잡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건가?  스치듯 불길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짐작했으나 설마 설마...  나는 이미 비명을 지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함을 직감하고 있었다. 막내누나.. 즉 동생 민영이 남편이 간 밤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새파랗게 질려 이내 악!!! 하고 비명처럼 내지르는 소리에 거실에 있던 딸들도 침착함을 잃고 만다. 엄마 무슨 일이야..?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는 말인가... 겨우 예순 다섯인데...   

 

 빌어먹을 코로나19!!!   핑계로 만남을 자제했던 날도 있었고 또 여행 한 번 가자는 것도 말 뿐이었건만... ...  弟夫는 지방에서 혼자 자취하며 직장에 다녔기에 주말부부로 지내왔고, 평소처럼 일요일에 지방에 내려갔다고 한다.  잠을 자는 동안 심근경색이 왔을 것으로 추측이 되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옆에 누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떠났을까? 안타까웠다.  그걸 또 남동생이 자취방에 가서야 직접 확인을 했다니..  창복이도 너무 쇼크를 받아 한 동안 공황장애처럼 굳어있던 채로 힘들어했다. 

 

 제부 박영배는 어릴 적에 너무도 가난했던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얻었던 수재라고 한다.  대성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북고등학교에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물론 그 이후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제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발생된 자신이 집안에서 희생양이 되다시피 한 가족관계망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기에는 10代 초반의 어린 나이에 겪어내야 할 갈등의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몸이 아파 병치레를 했고, 큰집에 양자로 입양하여 겨우 등록금을 받아야 했던 상황은 그로 하여금 소극적이며 위축된 감정으로 빠져들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뛰어나게 공부를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많은 동창들에 비해 내로라 하는 직장에 다니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그저 혼자서 바둑 두고, 역사 공부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따라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거의 은둔하다시피 지내왔었다.  그렇게 수십 여년이 흘러가 버렸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두 아들을 결혼도 시키고, 그럭저럭 삶이 안정되자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던 친구들에게 자신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오픈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제부를 찾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수소문해 왔지만 도저히 찾지 못했던 친구들을 드디어 만나 눈물로 기쁨의 해후를 가졌다는 말을 동생으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다. 자신의 남편이 이제야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 같다며...  그리고 한 3년여 동안 매 주 오랜 친구들과 만나 당구도 치고 여행도 가고 술도 마시고 너무너무 행복하다며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그랬을 것이다. 친구들이 제부를 그렇게도 찾기 위해 애썼던 story를 전해 들으며 참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이제야 친구들도 떳떳하게 만날 수 있었을 것인데 제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제부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그를 좋아하고 아끼던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 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호주, 미국 등 멀리 떨어져 있음은 물론 수십 년 동안 만나지도 못했던 동창들 및 심지어 선배들도 문상을 올 만큼 경북고 57회 동창, 경북고 동문들은 대단한 우정을 보여주었다. 친구가 떠난 날부터 꼬박 4일 동안 모든 장례 일정에 참여해 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준 친구 정태형 이라는 분의 각별했던 友情도 인상깊었다.

 

그 뿐 아니다. 제부가 23년간 일해 왔던 미군부대직장에서는 전례 없이 그를 위한 추모식을 치러 주었다. 가족 및 친지들에게  제부의 겸손하고 성실했던 모습을 깊은 애도로 표시하였다. 제부를 무척 좋아했고 존경했다는 前職 미국 군인이 눈물을 흘리고 추모의 꽃과 음식을 혼자 준비했으며 많은 직장 동료들도 사진 속의 제부에게 경례를 올려 슬픔을 나누어 주었다.  애국가가 연주되었고 둘째 子婦가 시아버지를 추모하는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추도식에서, 미국인 목사님이 읽어내려간 추도의 글에서는  영국의 저명한 詩人이자 성직자인 John Donne의 詩句를 인용하여 인간의 죽음은 결코 남의 것이 아니며 나와 직결된, 그리하여 진정어린 슬픔을 나눈다는 심오한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사람은 전체의 한 부분에 불과하고.......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나' 라는 英詩를 잠시 언급하였는데, 헤밍웨이의 장편소설이자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그 유명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가 John Donne의 詩에서 인용한 것인 줄을 새롭게 알았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슬프고 안타까운 시간 속에서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을 그렸고 마지막에 죽는 것으로 끝을 맺는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일까? 늘 의아했던 터였다. 영미문학 수업시간 헤밍웨이 작품으로  'Farewell Arms!'를 배웠고 또한 'For Whom the Bell Tolls?'이 귀절에 대해 의문을 잠시 품었을 뿐이었는데 45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 제목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가져보다니...  

 

서양에서는 누군가 죽으면 종이 울린다고 하는데 그 鐘이야말로 제부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울렸던 것임을 생각한다고 했다.  이 詩가 쉽게 이해되지 않아 몇 번씩 읽어보기도 하느라고 추도식에서 받은 글이자 미군 대령이 읽었던 추도사를 그대로 옮겨본다.

                 

   The Loss of Mr. Pak, Young Pae, was something that took us all by surprise. He was a quiet individal that mostly kept to himself but left an impression on all of us that are here today. A part of our team is missing, and will never be replace. It reminds me of the Poem by John Donne: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ach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e; if a Clod be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ie were, as well as if a Man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e were;

Each man's death diminishes me, For I am involved in Manki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For Whom the Bell Tolls by John Donne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존던(John Donne)

사람은 누구라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땅의 일부일 뿐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유럽도 그만큼 작아진다

​그건 모래톱이 씻겨 나가거나

​그대의 친구의 땅이나 그대의 땅이

​씻겨 나가 줄어들어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의 생명을 줄어들게 하는 것은

​내가 그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서 저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저 鐘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일지니

 

존 던(John Donne (1572]~1631)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  학식이 뛰어났고 시를 잘 썼지만 늘 빈곤 속에 살아 왔다.  1615년에 성공회 성직자가 되었고, 1621년에 세인트 폴 대성당의 수석 사제로 임명되었다. 그런 배경이 존던의 문학 작품에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담한 위트wit와 복잡한 언어를 구사하고, 연애시, 종교시, 설법을 쓴, 형이상학파 시인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대표작에 《벼룩》, 《일출》과 같은 노래와 소네트, 《성스러운 소네트 10번》이나 《관》이라는 종교시가 있다. T. S. 엘리엇 등에 영향을 주었고,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라는 제목은 존던의 설교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 위키 백과사전에서

(누구를 위해 鐘은 울리나?)

 지금도 유럽에 가면 종탑이 많은 걸 볼 수 있다. 교회당 꼭대기에 우뚝 세워진 종탑은 한 때 우리나라 교회당에서도 종탑이 있어 예배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오래 전 돈암동 우리 동네에 있던 영암교회가 생각난다.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나 볼 수 있을 자그마한 언덕에 교회가 있었는데, 교회 앞마당에서 예배 대신 수다떠는데 더 관심있었던 기억.. 아무튼 영암교회에서 뎅 뎅  뎅 뎅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온 동네를 감싸듯 정겨웠다. 그런데 저 종의 존재는 예배가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과 달리,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의 종소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을에서 누군가 죽게 되면 장례를 치르고 난 후 교회에서 조종(弔鐘)을 울렸다고 한다. 이렇게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나와 연결된 어느 하나가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결국 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즉 종을 울린다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동시에 결국 내 자신의 일부도 깎이어 나가는 것, 말하자면 언젠가 나도 죽게 되어 있으므로 나의 죽음이기도 하므로 그 종은 곧 나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그러니 종을 울리는 것을 혹시나 하고 누구의 죽음인지를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하기 까지 이 시를 여러 번 음미하였다. 참으로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 아닌가..

 

 제부 박영배는 수줍은 듯 해말간 웃음과 온화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지닌 이였다.   만나면 이런저런 얘기 잘 통했지만  그와 정치 color가 달라 부딪힌 적이 서너 번 있었다.  그러한 제부가 세상을 떠나고 보니 너무 미안하다. ..

 

동생과 조카들의 슬픔을 어찌 위로할 수 있으리요.. 그저 아무데서나 통곡이 나온다는 동생.. 그럴 것이다. 아버지가 만 57세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 엄마는 52세 무렵이었는데, 철 없던 우리들은 남편을 잃은 엄마의 슬픔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며, 막상 배우자를 잃은 상실감을 겪게되니 그제야 엄마의 슬픔을 헤아리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제부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최근 몇 달 동안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고 한다. 교회에서의 헌신적인 모습으로 달라진 믿음 생활을 가족들에게 보여주었고, 요즘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자꾸 했다고 한다. 하늘 나라로 떠나기 위해 이 땅의 삶을 정리하였던 것일까.

 

입관 직전 눈물로 작별인사를 하고, 한 줌의 재로 남아 납골당이 아닌 자신이 다니던 한성교회의 추모공원에 묻혔다. 그 과정을 일일이 적지 않으련다. 목사님의 인도로 많은 성도들과 가족 친지들이 안장 예배까지 함께 해 주었다. 우리네 인생도 반드시 맞게 될 죽음을 잠시나마 생각하게 하며 천국에의 소망을 두고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성교회의 장동필장로님이 기꺼이 교회를 위해 자신의 소유인 가평 땅을 헌납하였다는데 그분의 헌신으로 감사의 추모공원으로 거듭난 것 같다.

 

이제 동생 이민영(큰숲어린이집)은 자신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All-in으로 슬픔을 다독이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불암산 나비정원 언덕에서 합창단 공연  합창단 연주
준식, 윤임(아들 며느리), 해인(孫子)이랑 즐거운 한 때 큰아들 준식이와 손자
손자가 예뻐서 '보고 싶다'를 입에 달았다는데..
작은 아들 성범 결혼식
(준식, 성범 두 아들)

작은 처형 큰사돈네와 함께 유채꽃밭
     

 








단기선교로 방문한 교회당 내부
도배 봉사  
선교 봉사를 마치고 장로님,집사님들과 즐거운 물놀이  

 

     




....  in Vietnam 작은아들 성범이 결혼식날 즐거운 식사로 행복한 夫婦
     

 

 
















영정(影幀)으로 들어간 제부 박영배 한성교회 추모공원(가평)에 안장되다. 추모식(평택 미군부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