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8~29일 드디어 Italy
Italy
1. 역사 : 1861년 이태리 통일... 인구 5,700 만명
이태리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사용하는 언어 또한 다양하다. 토스카나, 피렌체, 피사 등의 도시국가들을 통일하여 세워진 국가로 사실은 서로 다른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부 쪽에는 심지어 아랍인들의 혈통도 섞여 있다고 하니 지역마다 개성이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1858년 1월 이탈리아인 오르시니(F. Orsini)가 나폴레옹 3세와 황후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발생한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 통일에 적극적이었던 황제가 즉위 후 태도가 바뀐 것에 대한 분노로 인한 것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오르시니를 영웅시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이탈리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양국과 동시에 전쟁을 치르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따라서 프랑스로서는 양국의 동맹 체결을 저지하거나 적어도 프로이센의 중립을 이끌어내야 했다. 따라서 나폴레옹 3세는 러시아에 손을 내밀었고, 러시아의 병력을 오스트리아 동부 국경에 집결시켜 프로이센의 발을 잡는 한편 오스트리아의 모든 병력이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다. 이리하여 1858년 9월, 제롬 공(公)이 나폴레옹 3세의 특사 자격으로 당시 바르샤바에 와 있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를 알현하게 되었다. 제롬 공의 러시아 접촉을 알아챈 발레브스키 프랑스 외상은 제롬 공을 정치 일선에서 몰아내고 다시 러시아와 교섭을 재개하였고, 이듬해 3월 비밀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결과 프랑스로부터 롬바르디아를 받은 후 열강의 개입없이 이탈리아인의 힘으로 통일이 진행되었다.
1860년 4월 시칠리아에서는 부르봉 왕가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으나 실패하였다. 5월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 군(軍) 1,000여명이 시칠리아 섬을 진격하여 팔레르모(Palermo)를 점령하였고, 그 해 9월 나폴리에 입성한 후 로마와 베네치아로 진격할 준비를 하였다. 당시 로마와 베네치아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군이 각각 주둔하고 있었기에 가리발디가 로마와 베네치아로 진격한다면 두 나라의 개입이 불가피했다.
이 즈음 교황령에서 소요가 일어났고 이를 진압한 사르데냐군은 남하하여 나폴리 왕국으로 들어가 붉은 셔츠단과 대치하였다. 이 때 가리발디는 자신이 점령한 지역을 모두 사르데냐 국왕에게 헌납하였고, 이로써 이탈리아는 로마와 베네치아를 제외하고 거의 통일되었고, 1861년 3월 17일 이탈리아 왕국의 탄생이 선포되었다. 초대 국왕으로 사르데냐 왕국 국왕 비토이로 엠마누엘 2세가 추대되었으며, 이탈리아 왕국은 헌법을 채택하고 의회를 구성하여 국민 주권적 원칙과 군주적인 전통을 융합시켰다. 이후 1866년 가리발디는 이탈리아군을 이끌고 베네치아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냈으며, 1870년에는 교황령도 새로운 이탈리아 국민군 앞에 항복함으로써 이탈리아 통일이 완수되었다. .
2. 國土 : 남북 간 길이 1,300 km , 국토의 35%가 해발 700 m 이상의 산자(山地)
3. 사람들 : 남부에서는 그리스 인, 카르타고 인, 북부에서는 에트루리아 인 등이 주도권을 잡고 발전되어 왔다. 그러다 기원 전 509 년 로마 인들이 에트루리아의 군주들을 물리치고 공화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태리 반도 | 내용을 입력하세요 |
1월 18~19일 로마 Rome - 예술, 건축 등 역사적 풍요로움을 담고 있는 도시
꿈에도 그리던 이태리 여행.
당연히 자유여행으로 이태리 구석구석을 일주해 보는 게 꿈이었다. 뉴저지에 살고 있는 경혜와 함께 떠나 보겠다며 수 년 전 부터 노래를 했건만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와의 여행이 쉬운 일은 아니었고 마침 가족 여행으로 컨셉을 바꿨다. 이번에는 겨울 여행이니 날씨 여건은 그다지 좋을 것 같지 않지만 언젠가는 나무와 꽃들의 향연이 한창일 좋은 시기에 친구와 다시 한 번 떠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며...
아부다비Abu Dhabi를 경유하는 긴 시간 끝에 드디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Aeroporto di Roma-Fiumicino(Leonardo da Vinci) 에 도착하면서 이태리 여행은 시작되었다. 사실 거의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나온 여행 길이다. 그저 딸내미가 가이드 해 줄 것을 믿으며.... 내가 준비해도 되겠건만 귀찮기도 하고 은근히 다가오는 두려움과 맞딱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민박집 예약이랑 온통 딸 애한테 맡겨 놓은 상태로 무작정 떠났다고나 할까? 정선이는 엄마 아빠와 셋이 떠나는 것이 그닥 내키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엄마 아빠 둘을 덜컥 길에 내 놓은 것 같다며 함께 나섰다. ...
로마 공항에 내리면 바로 근처에 우리가 묵을 민박집이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이니 할 말이 없을 만큼 준비 미흡한 것 맞지. 그렇게 꼬박 11일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공항에 도착한 거의 모든 우리 나라 젊은이들, 특히나 여성들은 아예 드러내 놓고 가방을 바짝 여미고 도둑이 따라올 새라 냅다 사라지는 모습들이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한국 젊은이들이라 해도 좋을 만큼 한국 애들이 많았지만 반가움과 또 작은 여행 정보라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뭐 하나 물을라 치면 대꾸는 커녕 눈길 한 번 없는 채로 쌩~ 하니 찬바람 불기 짱.... !!! 불친절하기는 참 내 원....... 기차를 이용하면 소매치기 당할 염려가 더 많다는데 굳이 나에게는 기차 타는 게 좋다면서 자기네들은 버스로 간다나?
어쨋거나 버스 요금 5 유로, 드디어 35 km 떨어진 로마 行 버스에 올랐다. 상당한 크기의 캐리어를 들고 끙끙 대던 자매 둘도 같은 버스에 올랐는데 나중에 이들을 피렌체 역에서 그리고 또 베니스 중앙 광장에서 마주치게 되었으니 한국사람들의 관광 일정이 모두 비슷비슷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한인 민박집이라고 해도 대부분 조선족이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이번 여행의 세 군데 민박집 중 두 곳이 조선족이 운영하는 집들이었다. 아무래도 최소한 한 끼 쯤은 한식으로 먹어야 하겠기에 조식, 석식이 제공되는 민박집으로 예약했다. 로마에서 묵었던 민박집에서의 식사는 비교적 맛있고 눈치 안 보고 맘껏 먹을 수도 있었으나 막상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물을라 치면 여기서도 친절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3일 간 식사는 잘 한 셈이다. 상당히 작은 집인데도 불구하고 4 개의 방이 있어 한 방에 이층 침대 두 개씩 두었는데 하루에 숙박 인원이 무려 16명 정도나 된다. 나도 민박집이나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식사 시간에 만나게 되는 이들은 거의 모두 대학생들이었는데, 여성 홀로 여행자들도 많고 어쩜 그리도 대학생들이 여행을 많이 하는지 참으로 부러웠다. 긴 방학 기간 모두를 여행에 할애하는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로서 이 정도로 견문을 넓힌다면 우리 나라 학생들 수준이 높아져 國益에 보탬이 될 것도 같다. 22 년전 유럽을 처음 방문했던 당시에는 휴대폰이나 인터넷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라 종이 지도를 들고 다녀야 했는데.. 요즘 애들은 loaming만 해 오면 네비게이션 보고 어디든 okay. 참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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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Colosseo 중동에서의 군사적 승전 기념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창안하여 기원후 79 년에 미완성으로 남겨진 원형극장. 겉보기와 달리 무척 복잡하다. | 팔라티노 언덕에서 | 트레비 Trevi 분수 : 1453년 교황 니콜라스 5세를 위한 건축물 이곳에서 만나는 세 갈래 길(트레 비에)에서 유래된 지명 |
1월 20일 바티칸 투어
바티칸은 하나의 작은 국가로서의 역할을 한다는데....
겨울철이라 門 밖에서 입장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는데도 성벽을 따라 길게 늘어서서 추운데 오돌돌 떨며 기다리기를 40 여분. 바티칸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 꼬박 하루가 걸려도 어림 택도 없으렸다. 그러니 여름철 성수기때는 오죽할까.
바티칸. 정말 어마어마 했다. 바티칸 투어의 백미(白眉)는 시스타나 예배당 천정에 그려진 미켈란젤로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완성한 '천정화' 이다. 사실 나 자신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흔히들 '천정화'라는 진짜 제목 대신 거개가 '천지창조'가 제목인 줄로 알고 있다는 바로 그 그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후 아담에게 손으로 생명을 불어 넣은 장면을 묘사한 '아담의 창조' 부분이 단연 白眉라고 한다. 1508~1512 년까지 미켈란젤로가 4년여라는 긴 기간 내내 목을 뒤로 젖힌 채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구약 성경(舊約 聖經)의 '창세기'의 내용을 총망라하여 완성한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천정 벽화다.
500 여년 전, 높디 높은 성당 천정벽에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다니 發想 자체가 참으로 상상을 초월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물감이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려 피부병은 물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수 년 동안 그림을 그린 탓에 목덜미가 펴지지 않는 등 혹독한 신체적 고통이 동반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내용을 담은 바로 이 '천지창조' 주제 가 그림의 일부인 '천정화'를 보기 위해 바티칸에 왔다고 할 정도로 웅장하고 거대하며 과연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게 하는 위대한 미술 작품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그린 청정화다. 300 명 이상의 인물이 묘사되어 있는 이 그림은 창세기에 나오는 , <빛과 어둠의 분리>, <천지 장조>, <아담의 창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이렇게?' 아마도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여 이루어 낸 천재 중의 천재라고 할 밖에...
독일의 대 문호 괴테는 이 그림을 본 이후 누구도 이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 앞에서 자신의 신체의 고통을 말하지 말라고 했단다. 천정화가 있는 방에서는 촬영이 금지 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아주 작은 소리 조차 내면 안 된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경비원들이 계속 '쉿~~!!!" 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 쉬~잇!!! 하는 소리가 오히려 더 시끄러울 따름이니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천재 화가의 고단한 작업과 그 결과물들에 대한 감탄과 경외를 보낸다.
바티칸 투어에만 꼬박 하루가 소요될 만큼 바티칸에는 볼 거리가 풍성했다. 프레스코 기법의 그림들. 시대 별로 그림의 표현 수법이 달라지는 것 등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 성실한 청중이 되니 더욱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바티칸 내부에 작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바로 그 앞에 'SAMSUNG projection monitor' 가 설치되어 있다. 당연히 해설 언어 속에는 한국어도 포함되어 있다. 바티칸 내부의 수 백 개의 방을 다 돌아보는 데는 거의 8 km 길이를 걷는 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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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Color는 권위의 상징 | [최후의 만찬] 시스티나 성당의 뒷벽을 장식하고 있는 또 하나의 걸작 프레스코 벽화 |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
1월 21일
티볼리, 로마(Tivoli , Rome)
남부 투어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터였다. 비용도 많이 들고.. 일정도 그렇고 하던 차였는데 Joony가 온다니까 하는 수 없다 싶어 가까운 곳을 택하다 보니 근처 티볼리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티볼리... 이름 만큼 이쁜 곳이겠거니.. 하고 출발.
지하철 A 선을 타고 거의 종착역 부근에서 내려 다시 버스로 1시간 10분 이상을 덜커덩 수준의 노후된 지저분한 버스를 타고 티볼리로.. 진짜 웃기는 게 버스 정류장 안내가 없다. 탈 때 부터 불친절한 역무원들... 암튼 이태리인들은 거의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밖에도 별다른 정류장 안내 표지도 없건만 계속 사람들이 북적북적 내리고 탄다. 교황 중의 누군가가 살았다는 대저택 하나 보려고 티볼리에 간 셈. 별로 볼 거리도 시원찮다는데 입장료가 무려 8 유로... 우리나라 고궁 입장료는 그야말로 공짜인 셈이다. 그래도 고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은 듯 하건만..
티볼리 가는 내내 기분도 안 좋고 뭐 그랬다. 시간도 마땅치 않아서 그냥 동네 언저리만 보기로 했다. 배도 아팠고 화장실 등을 다녀오는 것도 너무 불편하고 모든 게 열악했으나 다행히 작은 카페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던 게 기억에 남을 정도.... interval이 긴 버스를 잘 못 탔다가는 오후에 준용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인 트레비 분수까지 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바티칸 관람과 발바닥 통증을 딛고 걷고 또 걸었더니...저녁에는 몸은 아주 파 김치가 되었다. 저녁 식사 후 침대에 누우니 녹초가 되어 슬그머니 눈이 감기려는 중인데 갑자기 긴장모드로 돌입하는 멘트에 잠이 확 달아났다. 이제는 엄빠 한테 말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말 門을 여는 또니. 무슨 일이 생겼다고?? 엉?? 데이트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내 딸에게 혹시나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일까? 하며 이 무슨 드라마?? 하며 엉뚱한 상상을 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내일 ‘트레비 분수대’ 앞에서 오후 3시30분에 준용이와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 헐... 뭐라고??? 아니 여행을 떠나오기 전 우리들의 짐을 전철 역까지 실어다 주고 'Have a good trip!' 한 아들이 아닌가??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마냥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못해 덜덜 떨려왔다. 진짜 부들부들 떨렸다.
공항에서는 물론 막상 민박집에서도 거의 대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홀로 또는 친구들과 배낭 여행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 데, 그런 젊은이들을 보면서 내 아들도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며 계속 자책하고 있던 터였다. 시간 널널한 대학생 때 그나마 여행의 여유를 누려야 하건만 대학 졸업반인 아들은 취업 준비로 여유로움을 가질 수도 없는 터였다. 그래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는데 ... 하는 아쉬움으로 가득했었다. 괜히 배낭여행 하는 애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내내 끌탕 하던 엄마를 바라보며 작은딸 심정선 양은 엄마의 마음을 풀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여행을 제대로 할 지 도저히 그냥 봐 넘길 수가 없었다는 거다.
종이 지도에 의존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로마 시내를 누비는 중이었으므로... 저녁이면 wifi 가능한 숙소에서 아이들이 카톡으로 의견을 주고 받은 끝에 비행기 출발 7시간 전에 집안의 각종 행사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큰딸내미가 일단 티켓팅을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준용이의 여행 합류에 대해 말하던 시각엔 아들이 이미 경유지인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내 스타벅스 커피샵에서 인터넷으로 3남매가 서로 주고 받은 것이었다.. .아들과 함께 못 온 엄마를 위해 두 딸들이 날치기 통과하여 결정 내린 '엄마를 위한 효도 작품'이었으니...
대학원 공부를 하기 위해 대전에 가 있는 아들 심준용도 거의 엉겹결에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학원 실험실 친구들에게는 엄마가 함께 여행하고 싶어 하셔서 중간 합류해야 할 것 같아서 급히 로마 행 비행기를 타러 인천 공항으로 간다고 했다나.. 실상을 모르는 후배들 왈, ‘아니 형은 금수저 물고 나왔어요?’ 하는 농담을 뒤로 하고 실험실에서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차림 그대로 밤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날아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들 loaming 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오후 3시에 트레비 분수대 앞에서 만나자고 했단다.
떼르미니(Termini) 에서 몇 번 버스를 타야 되는지 살피고 또 살핀 끝에 트레비 분수 근처에서 내려 조금 헤매다가 오후 3 시 경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트레비 분수는 명성과는 달리 그리 크지도 않건만 분수대 앞에 사람들은 어쩜 그리도 많고 많은지... 그 와중에 아들이 어디서 나타날까 싶어 계속 두리번거렸다.
드디어 만나기로 한 정확한 시각에 주니가 '엄마~~~!!! ' 하고 짠~~ 나타났다. 갑작스럽고 얼떨결에 떠나 온 아들... 자신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면서.. 이로서 딸 아이의 길 찾기 수고는 오롯이 주니의 몫으로 넘겨지고 이렇게 자유 배낭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이 더 보태진 셈이다.
어제 들러서 맛있게 마셨던 커피를 네 명이 된 가족들이 다시 그 집으로 향했다. 결국 그 유명한 커피 집 타짜 로라 를 두 번 씩이나 들러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묘미이지 싶었다. 오죽하면 그 유명한 Starbucks 커피도 이태리 망을 뚫지 못했다는 말을 주워 들으며 커피 한 잔에 만족해 한다. Espresso, Cappucino, Black 등 각각 다르게 시켜 맛을 보다. 어제는 눈길도 안 주었던 예쁜 커피 머신들. 가격도 싸지만 커피 애호가들을 매료시키는 정말 깜찍한 커피 기구들을 둘러보는 것도 즐겁기만 하다.
커피를 그렇게도 많이 마시건만 거리에는 우리나라 여기 저기에 널려 있는 것처럼 플라스틱 컵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그네들은 커피 집 안에서 도자기 잔에 서서 마시는 것 같다. 아니 그랬다. 물론 테이블을 차지하고 마실 수도 있지만 좀 더 비싸다. 그러니 오직 커피를 즐기기 위해 온 이들은 그저 서서 커피를 마시는데 정말 줄 서서 기다려야 된다. 한 잔에 2천 원도 채 안 하는 커피들... 커피를 내리는 멋쟁이 종업원들.... 마음에 들다.
이태리 사람들은 대부분 모자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또한 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자가 참 잘 어울린다. 여성들은 대부분 털실 뜨개 모자를, 남자들은 hat를 주로 쓰고 다녔다. 작디 작은 얼굴들은 모자 착용만으로도 모두 멋스러웠다. 큰 키에 긴 오버 코트를 입고 성큼성큼 활보하는 남성들은 진짜 하나같이 모델들도 부러워할 지경으로 멋쟁이들이다. 피자 집에서 써빙을 하던 매력적인 종업원들도, 늙수구레한 노년 층들도 한결 같이 멋있어 보이는 체형의 소유자들이 곳곳에 넘쳐났다. 와우... 진짜 눈요기 짱이다.. 키도 작고... 얼큰이들도 많아 도무지 fashion 과는 좀 거리가 있는 우리네들 입장에서 보면.... ㅠ.ㅠ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어둠이 내려 앉은 로마 시내는 조명등이 밝혀지고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그 때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어 누군가를 에워싸고 종이를 들이 밀고 그의 싸인을 받고자 북새통을 이뤘다. 그냥 지나치자는 가족들의 의견을 저리 하고 나도 얼굴을 들이밀고 일단 '유명 인사'의 싸인도 받아 두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이태리의 유명한 作家라고 한다. 낯선 곳이니 내 얼굴도 두꺼워진다. 그 작가와 함께 사진도 한 컷... !! 우리 애들은 이런 엄마를 못 말린다며 ... 그렇게 해서 로마에서의 셋째 날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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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로라 카페. 커피값도 우리 나라보다 훨씬 싸지만 정말 맛있다. 단 서서 마셔야 한다. | 커피집 전경 | 스페인계단 : -공사중이라 다소 어수선.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계단 |
1월 22일
아시시(Assisi)
떠나오기 전 기차 탈 때 표를 미리 기계에 찍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건성으로 지나쳐 버린 탓에.. 결국 진짜 벌금을 내는 일이 발생했다. 아시시 行 열차를 前 날 티켓팅 해 놓고 당당하게 Assisi 로 가기 위해 플랫폼으로 들어섰을 때만 해도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시간도 좀 남아 열차에 탑승하기 전 수다만 늘어 놓고는... 아시시 行 열차가 드디어 출발했는데 한 10 여 분 흘렀을까 갑자기 뇌리에 떠오르는 그 단어... '벌금' ... 설마 했는데 걱정이 되는 터라 건너편에 앉아 있던 꽤 인텔리 처럼 보이는 이태리 젠틀맨에게 사연을 말했더니 벌금을 물을 거라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안내도 받은 적이 없노라... 하니... 자신이 역무원에게 말해 보겠노라 했다.
곧 역무원이 나타났고 이태리 신사가 조근조근 설명하니 그럼 최저 벌금만 부과하겠다고 해서 결국 네 명이 20 유로를 벌금을 냈다. 알고 보니 탑승 시각이 찍히는 자동 기계에 열차표를 넣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탑승 시간이 안 나와 있으면 그 표는 돌아올 때도 유효하므로.. 좋다. 그렇다면 표를 팔 때 미리 얘기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사람들은 막무가내. 그것도 복궐복인 게 알고 보니 Assisi 에서 만난 어느 한국인 가족은 티켓 펀칭을 하지 않았는데도 벌금도 없었고 그냥 역무원이 기차 내에서 기계로 찍어주었다는 것이다. 암튼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는 정말이지 고막이 터질 듯 아파 왔다. 터널 지난다고 귀가 아픈 적이 처음이라 참 희한했다
아시시는 聖 프란체스코의 고향이면서 그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대성당이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나즈막한 구릉에 자리잡은 아시시는 하늘 위로 솟아 있는 듯한 작은 마을로 얼마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지 . 마을 전체가 계단과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다. 아시시의 하늘은 청색 그림물감을 부은 듯 푸르디 푸르다.
성자 프란체스코를 기리는 마을이라서인가.. 성당 내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조차 차분해 보였고 수도복을 입은 이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그 어디서도 마주한 적이 없던... 너무도 경건해 보였다. 아시시 성당 내부의 천정 역시 아시시 하늘을 닮은 듯 청색으로 인상 깊게 그려져 있다.
지하 성당에 들어서니 온갖 불평하는 내 모습이 저절로 드러나 부끄러워졌다. 후드 복장으로 icon 化 된 聖者 프란체스코, 그의 시신이 묻힌 곳. 삶의 끝인 죽음 이후의 모습이 엄숙함으로 다가온다. 입장료도 없지만 촛불 등 모두 다 헌금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C 번 버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로마 행 기차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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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푸른 Assisi 하늘 성 프란체스코 성당 |
작고 고즈넉한 분위기 묻어나는 오솔길 천국 | 바로 요~런 기계에 표를 인식시켜야 한다. 벌금을 물고 나서야 눈에 띔. |
19:50 로마 떼르미니에서 Firenze 행 21:20 분발 기차로 출발 좌석도 편한 고급 열차로 열 받았던 아시시 행 열차와는 사뭇 다른 Tran Italia 열차로 피렌체로 고고 싱
1월 23~26일
피렌체(플로렌스), Firenze(Florence)
그냥 이름만으로도 피렌체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던가. 세계사 공부하면서 문예부흥의 꽃을 피운 도시 플로렌스, 곧 피렌체. 다들 피렌체는 절대로 절대로 실망할 리가 없다고 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내린 시각이 거의 밤 9시30분
역을 빠져 나오자 마자 철 길이 놓여 있는 좁은 도로와 만나게 되는 좁은 도로는 마치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늦은 밤 귀족들이 어디론가 황급히 가기 위해 옷을 갖춰 입고 마차를 타고 달리는 듯한 그런 ....길이었다.
역에서 한 5분 여 걸어 찾아 간 한인민박집. 좀 빡빡한 인심 느껴졌으나 숙소는 깔끔했다. 여기도 온통 홀로 여성 배낭객들이다. 거의 두어 달째 여행 중인 애들도 있고 또 나름 각자의 여행 경험담을 들을 수 있어서 그런대로 괜찮았다. 화장품 가게에서 소매치기 당한 경우도 있고... 이태리는 온통 소매치기 소굴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가방을 챙기고 또 챙겨야 한다.
하지만 이튿날 밝은 아침에 만난 바로 그 길은 그저 좁은 길일 뿐으로 지난 밤 피렌체의 첫인상과 사뭇 다름을 인식하고서 슬며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피렌체 건물이 참으로 독특하기는 하다.
아르노 江 위의 베키오 다리를 지난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다는 그 다리.. 옛날에는 이곳에 처형장이 있어서 사형수들의 핏물이 온통 강물로 흘러들어 악취가 나는 악명 높은 곳이었으나 이를 수치스럽게 여겼던 ?? 왕이 지금의 아르노 강변으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Puccini의 오페라 '쟈니 스키키' 중 나오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바로 이 아르노 강을 배경으로 작곡된 아리아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아르노 강에 빠져죽겠다며 아버지의 승락을 구하는 노래로 노랫말과는 달리 참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노래이다. 그 아르노 강은 서울의 한강과는 너무도 다른 마치 실개천 느낌의 작은 강으로 다리 양쪽으로는 귀금속 상가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강 위에 놓인 다리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지만 상가를 빠져나와야 다리의 모습이 보이고 언덕 위에 올라야 멋진 아르노 강을 만날 수 있다. 피렌체 전경을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까지 가면서 발바닥 통증으로 몇 번씩이나 힘들어 했다. 입장료를 내고 두오모 성당에 꼭대기에 가면 멋진 광경이 펼쳐지겠지만...
피렌체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미켈란젤로 언덕 계단에서는 추위도 잊은 채 깡술 마시는 미국 여자애들도 있고 아무튼 온통 젊은이들의 잔치... 모두들 두오모 성당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서 곧 만나게 될 석양을 기다리고 있단다. 여기서도 예외 없이 한국 애들이 넘쳐 난다. 언덕 위에는 작은 구멍 가게가 있는데 바로 가게 옆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인가 싶다.
Arno 江 건너 멀리 붉은색 두오모가 돋보이는 피렌체 전경이 펼쳐진다. 도시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그 언덕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일품이라 했던가. 저녁놀이 하늘을 물들이긴 했다. 어둠이 내려 앉으면서 하나 둘씩 불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렌체 야경이 볼 만할 테지만 하필 날씨가 흐리고 추워서 도저히 늦은 시각까지 견디지 못 하고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그래도 피렌체를 내려다 보며 언제 다시 와 보겠나 싶어 눈에 사진을 찍어 둔다. 핸드폰으로만 사진을 찍으려니 편한 대신 멋진 사진을 건지기란 몹시 어렵다. 와... 오는 시간은 무려 30 여 분 버스를 탄 것 같다. 돌아돌아 오는 버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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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 Italia 피렌체 행 열차 내에서 |
Piazza Santa Maria Novella in Firence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 부풀어오른 듯한 조각으로 된 벽면이 매우 독특하다. |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다. 본 피렌체 멀리 두오모가 보인다. |
산지미냐뇨(San Gimignanyo)
피렌체에서 56km 정도 떨어진 토스카나 주 시에나 현의 소 도시인 산 지미냐노는 아름다운 중세건축물인 석탑들이 남아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지역이기도 하다. 예전엔 귀족들이 가문의 부과 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탑을 지어 72 개의 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14 개 정도 만이 남아 있다고...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마을이며 골목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 유산이다. 크고 작은 塔 들 사이로 난 운치 있는 골목들은 대체로 카페가 즐비하다. 너무도 조용해서 이 사람들이 어떻게 가게를 운영하는가 할 정도이다.
모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니 봄 날씨마냥 너무도 따사롭다.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이태리 여행을 하지만 이곳 산 지미냐뇨에 들르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좋다. 넉넉함이 느껴진다.
아무리 돌아도 지겹지 않은... 다시는 이곳에 또 못 오겠지 하며 갔던 길 되돌아 전망 좋은 언덕 위로 올라가 본다. 토스카나 지방의 중세 분위기 물씬 배어 있다. 석탑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 라인 위로 푸르디 푸른 하늘이 아름답다.
겨울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구불구불한 언덕의 성곽길을 이리저리 걸으며 너무도 아름다운 풍광에 넋가간 듯 단 몇 분이라도 더 머물고 싶었다. 멀리 토스카나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그 언덕의 성곽길에서 입맞춤을 나누는 연인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멋지던지.. 영화의 한 장면이란 바로 이런 것일진대.. 사랑하는 연인들을 보며 가슴 속 저 깊은 데 두고 온 설렘이 솟아오름을 알아차린다. 영화감독의 주문대로 연기하지 않고는 그런 멋진 포옹을 할 수 있을까 ? 아니다. 저 아름다운 햇살과 갈색 흙길과 녹색 평원이 이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피렌체 행 버스가 오기를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데 옆 자리의 순수해 보이면서도 매혹적인 느낌을 주는 아가씨가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고도 세련된 모습으로 말을 걸어 온다. 까만 긴 코트 주머니에 양 손을 넣고 고개를 비스듬히 벽에 기댄 채 Where are you from? 하면서부터 배낭여행의 삶의 또 다른 그림들이 그려진다... 벨기에에 살고 있는 아빠와 새엄마가 자신을 만나러 피렌체에 왔으며, 그렇게 그들 가족도 산지미냐뇨 여행을 왔다고 한다.
피렌체로 돌아오는 버스는 마침 텅텅 비었고 마음 놓고 1시간 30 여 분을 가족 미팅으로 다소 흥분된 분위기로 아예 버스를 전세 냈음.. ㅋㅋ. 피렌체 대학에서 석사 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딸을 만나러 온 부부인데 언어,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어의 문자, 알파벳 문자 등 꽤 수준 높은 지식을 갖고 있는 여성으로 참 반가웠다. 언제 꼭 Brussel에서 만나고 싶다고 이미 현지에서 이메일을 두 번씩이나 보내 옴. 내 다음 여행지는 이미 벨기에로 정해진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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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 지방의 중세 분위기 물씬. 석조탑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 위로 aqua marin 하늘 |
걷고 또 걷고 싶게 만드는 골목길 | 청초한 매력 발산 -피렌체 아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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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건만 이 녀석들은 엄마를 놀래키는 선수들-이 애들이 아니었더면 셀카봉은 무용지물이었을 게 뻔함 |
토스카나 산 지미냐노 언덕 위의 戀人들. 마치 영화 속장면처럼 그들은 ... | 따사로운 햇살 부서지는 성벽에 기대 이태리 관광 책자 뒤적이다. |
피사 Pisa
다섯 개의 해안가 마을이라는 친퀘 테레(Chinque Terre)-에 가는 것이 내 바램 중의 바램이었으나 겨울이라 시간표도 그렇고 이미 숙박 예약을 해 놓은 터라 돌아오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고심 끝에 포기했다. 어차리 Pisa 행 열차를 타면 그 열차로 친퀘 테레에 내릴 수 있는 거라 교통비도 안 들지만 당일에 못 돌아오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하루를 버릴 수가 없었다. 왜냐?? 이튿날 베니스로 떠나야 했기에.. 하루 종일 아쉬움 많았지만 그래서 좀 편하게 마음 먹고 Pisa 에 들렀다.
Pisa 는 역에서 사탑까지 30 분 정도 걸으면 될 만큼 작은 마을이지만 역시 유명 관광지라 사탑 주병에 사람은 엄청나게 많아서 사진 찍기도 만만치 않다. 여기저기 단체 여행객들이 많았다. 斜塔이라니 .. 얼마나 신기한가... 볼 거리 치고는 규모도 작고 무슨 공원에 댕그러니 자리 잡은 모양새가 누추하지만 그래도 신기한 것은 분명할 지니... 어떻게 탑이 기울어져 있는데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다양한 포즈로 탑을 둘러메고 밀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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斜塔 밀기 |
피에 솔로 Fie Solo
피에 솔로는 피렌체 근교 관광할 때 쉽게 갈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산 도미니코 성담 겸 수도원 근방에서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언덕 위는 그다지 넓지 않다. 화려한 것만 지나쳐 온 것에 비해 피에 솔로는 정말 소박하고 조용하다. 언덕 위 戀人으로 보이는 이들이 기타 연주법을 알려주며 노래를 연습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참 낭만적으로 보였다. 날씨가 흐려서 전망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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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國旗를 상징하는 세 가지 色으로 조명을 비추고 있는 조각물 |
피렌체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Pie Sola 언덕 |
기타 선율에 맞춰 다정하게 노래부르는 연인들 |
1월 26~28일
베니스(베네치아) Venezia
베니스 민박집 역시 조선족 말투가 거칠게 묻어나오는 아줌마. 역시 기가 세 보이고 거침이 없고 .... 식사는 진짜 형편 없었으나.. 이곳에서 만난 어떤 청년은 로마 떼르미니 역 부근에서 어떤 흑인 친구가 참으로 당당하게도 청년의 캐리어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끌고 가더라는 것이다. 자신이 골프를 전공하고 있는 체육과 대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장면 속에서 그 캐리어가 자신의 것임을 알면서도 금방 대처하지 못 하겠더라고 했다. 그나마 재빨리 군중 속을 헤집고 그 흑인을 따라가 가방을 뺏어 왔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뒤돌아서는 청년에게 오히려 뭐라뭐라 소리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뭐.. 언어가 통해야지 ... 뭐... 아... 아무튼 이태리에서는 큰 캐리어마저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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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Italia - 적어도 2개월 前 예매하면 상당히 싸다. |
Burano 섬.. 겨울이라 다소 썰렁 | 베니스 가면 축제 기간 : 멋진 가면들이 즐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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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밝은 햇살 | 곤돌라 : 유명세에 비해 기원도 불분명하여 논란이 많다고. |
리알토 다리 |
베니스의 교통 수단은 오로지 수상버스(bateau) 라는 말이 늘 신기했었다. 베니스 역 바로 앞에는 버스 정류장으로 여기서 버스를 타고 본격적으로 베니스 섬으로 갈 수 있다. 바다 위로 난 다리를 건너 30 여 분 간 달리니 멀리 짠물에 쩔은 나무 기둥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one day ticket 으로 하루 종일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얼마든지 배를 타고 옮겨 다닐 수 있다.
우리는 Burano 섬과 Murano 섬을 다녀오기로 한다. 부라노 섬은 마을 전체가 분홍 노랑 보라 파랑 녹색 등 다양한 컬러로 외벽을 칠한 집들로 동화 속 나라 같다. 하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지는 않고, 음식값은 엄청 비싸다. 날씨가 추우니 밖에서 먹을 수는 없어서 요리조리 다니다가 그냥 피자를 먹으러 들어갔는데.. 사실은 멀쩡하게 생긴 노인의 호객 행위에 살짝 속은 느낌으로 들어간 음식점이다. 피자 갖다 주는 서비스 요금도 따로 받으니 은근히 부화가 난다.
베니스 뒷골목은 잘 알려진 대로 미로 처럼 길을 찾기가 어렵지만 그런 대로 재미있다. 그렇다고 길을 잃을 염려가 있겠는가. 1월 말에는 가면축제 기간이라고 하여 엄청 기대를 했는데 막상 가면을 쓴 사람들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첫째 날에만 시끌벅쩍했던 것 같다. 좁은 골목길에는 보랏빛 라벤더 마른꽃들이 넘쳐나는 상점, 엄청나게 다양하고 멋진 가면 파는 집, 명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광장을 걷는데 로마 공항에서 만나고, 또 피렌체 역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바로 그 자매들을 또 여기서 만났다. 깔깔거리며 잠시 서로의 여행담을 나누고 나중에 서울에서도 연락할 수 있게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
1. 29 베니스 공항에서 항공기가 무려 3 시간이나 연착하는 바람에 항공사 측이 제공하는 점심 식사를 먹고 환승지인 Abu Dhabi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늦은 밤. Flight has departed !!!. 하는 수 없이 공항 내 호텔에서 하루를 투숙하고 예정에도 없이 Malasia Air Line 을 탑승하여 귀국. 말레이시아 항공기는 좀 지저분하고 음식도 서비스도 도대체 내키지 않았다. 에티하드 항공과는 사뭇 달랐다.. ㅎㅎ 그러고 보니 아들 Joony는 우리와 다른 터어키 항공인데다가 티켓팅 날짜도 우리 보다 거의 하루 늦게 되어 있어서 일부러 볼로냐 지방에 다녀온 터였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서울에 도착하였다.. 집에 오니 그 동안 엄청났다는 추위에 아뿔싸!!! 군자란도 동사했다. 10년을 키우며 해 마다 주홍빛 화사한 꽃을 피워내 나를 즐겁게 해 주었는데.. 미리 실내에 화초를 들여놓고 떠나왔어야 했는데.... 그만 아까운 식물들을 얼리고야 말았다. 아... 까워라...
또 가족 여행을 언제 갈 수 있으려나? 시간이 지날 수록 어려워지는 게 가족여행이라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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