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응급실...

라일락74 2014. 2. 19. 20:05

  2014. 2. 17 (Mon.)

  2년간 담임교사로서 나름 열심히 근무했었건만 성실보다는 억지로 코 털만한 허물을 들어내고 싶어하는 이들 틈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1년 짜리 계약은 다른 사람이 하게 되고 겨우 6 개월 근무 만을 할 수 있게 된 터라 마음 불편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여기저기 근무처를 알아보는 가운데 평소 친하고 마음을 주고 받는 사이라 여겼던 이의 앞 뒤 말 다른 데 실망스러웠고 그래서 일 자리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인 중국 쿤밍 소재 한국 학교에서 마침 근무하겠냐는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인턴교사였는지 급여도 기간제 교사의 半 겨우 넘을까 할 만큼 적었다.  게다가 올 여름 방학 무렵 아들, 딸 둘 다 귀국을 앞두고 있어 오랫만에 가족이 모일 판인데 굳이 내가 떠나 1년을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될 지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중국 쿤밍까지 날아가 근무를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굳히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닷새 전에도 똑같은 증세로 경찰병원 응급실로 119 구급대에 의해 실려갔던 남편이 바로 오늘 새벽 또 같은 증세를 보여 삼성의료원 응급실로 간 것이다. 이미 한 14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증세로 거의 몇 달을 고생했었는데 이번에도 당시와 비슷한 증세로 된통 고통스러워했다.

  새벽 5 시 무렵 깨자 마자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으로 괴로워하였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고 너무 어지러워 눈을 뜨지도 못하고 제 몸 하나 가누지도 못하는 신체적 고통으로 얼굴은 완전 일그러지고 신경질은 극도에 달해가고 있는 듯 했다. 달려가 손을 잡아주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남편이 이렇게 또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싶어 속상했다. 

  하필 이 날 따라 자동차도 사무실 주변에 갖다 놓은 터라 하는 수 없이 함영주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맙게도 그녀의 남편이 달려와 주었고 함께 부축하여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부축하느라 코 앞에 들이댄 남편의 머리에서는 지독한 땀 냄새가 풍겨 왔다.  얼마나 더 모자라 이런 신체적 고통으로도 나를 이렇게나 힘들게 할까 싶어 야속한 마음만 앞섰다. 그러나 정작 아픈 사람의 고통을 내가 어찌 알리요.

 

  CT, MRI 검사까지 마치기까지 무려 여덟 시간 동안을 남편 옆에 있으면서 병원 복도에서 누가 쳐다보거나 말거나 하루 종일 얼마나 눈물을 쏟아냈는지 모른다.  처음엔 야속함 때문에 시작된 눈물이었으나 차츰 그가 가엾고 또 내가 남편에게 잘못한 일만 생각나면서 회개와 미안함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야말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을 지도 모르는 이 나이에 .. 그나마 늙어가는 세월만 남은 터에 좀 더 참고 좀 더 사랑해 주리라 생각하였다.

 

  CT 검사를 마치고도 병 명을 확진할 수 있는 근거가 노출되지 않았기에 혹시나 뇌경색이 염려된다며 MRI 검사를 한 결과 다행스럽게도 뇌 문제는 전혀 없었으나 귀 안 반고리관에 평형 감각을 유지시켜주는 돌멩이, 즉 耳石이 떨어져 있어 그것이 어지럼증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석증에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고 다만 자세 교정으로 이석이 붙어 있게 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하니 막막했다.

  세 아이들이 다 집에 없는 지금.. 나마저 그와 함께 있어 주지 못한다면 어쩌겠는가.. 독일 마인츠로부터  토니의 울먹이는 소리가 수화기 넘어로 전해졌고, 큰딸도 무거운 마음으로 근무지인 음성으로 내려갔다. 그나마 San Diego로 날아가 막 적응을 시작한 준용이에게는 아이가 공부하는데 힘들까봐 가족 카톡방에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리라... 자책하며 미워하며 괴로움으로 가슴을 쓸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병원 로비에서 나에게 너무도 가슴 아픈 일 생긴 거 알게 되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하며 남편의 회복만을 기다렸다.

  모든 허물을 나한테 돌리면서 '아내의 자리'를 지켜야 하겠다고 마음 먹은 하루다.  


 2013. 6월 북한산 걷기코스

2012. 8월 ..나의 사랑들

덕유산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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